20세기 초, 유물론자들은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앞선 네 세기 동안 이루어진 풍성한 과학적 발견들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강화했고, 대부분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을 그 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발견들은 그때까지 그리스도교적이었던 유럽을 깊이 뒤흔들었다.
첫 번째 충격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가했다. 그들은 지구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뉴턴, 데카르트, 라플라스는 별들이 천사들에 의해 하늘을 가로질러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우아한 수학적 단순성을 지닌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뷔퐁은 지구의 나이가 성경의 어떤 서술보다도 훨씬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며, 수만 년, 심지어 수백만 년에 이르는 연대기를 세웠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느님의 작품으로 여겨져 온 인간 자신도 라마르크와 다윈의 저작 속에서는 거대한 진화사의 산물로 나타났다. 인간은 유인원, 혹은 그와 매우 비슷한 어떤 존재로부터 내려왔다는 점에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발견들을 종합해 보면, 창조주 하느님이라는 개념은 불필요해 보였다. 우주는 그분 없이도 설명될 수 있는 듯했다. 1800년경,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는 우리 태양계를 지배하는 수학 방정식들을 나폴레옹 황제에게 제시했다. 나폴레옹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전해진다.
“라플라스 씨, 당신이 우주의 체계에 관한 이 방대한 책을 썼으면서도 그 창조주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들었소?” 라플라스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에게는 그 가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든 각색된 것이든, 그것은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한다. 만일 창조주가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그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더 나아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해롭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썼듯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었고, 훗날 프로이트가 주장했듯 인간 소외와 신경증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오래된 믿음들을 버릴 수 있다면, 인류는 마침내 번영과 지식과 자유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성적 해방은 이 약속의 최전선에 놓였고, 그 뒤에는 찬란한 내일에 대한 전망이 뒤따랐다. 과학은 진지하고 계몽된 정신의 몫이며, 신앙은 반쯤 빈 성당 안에서 중얼거리는 노인들의 영역이라고 주장되었다.
그러한 과학적 발전이 새로운 철학들을 낳고, 그 철학들이 다시 종교를 반동적이라고 선언한 사회주의 혁명의 물결 속에서 정치적 표현을 얻게 된 것은 거의 필연적이었다. 이 운동들은 유럽 전역을 휩쓴 뒤 세계로 확산되었다. 대표적인 예만 들어도 1917년 러시아의 레닌, 1920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1930년 독일의 히틀러, 1936년 스페인 내전, 그리고 훗날 1948년 중국의 마오쩌둥이 있었다.
그 시대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과학이 같은 길을 따라 무한히 계속 나아가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유물론이 과학 자체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유럽 전역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굴욕감을 느끼며 순응했고, 많은 이들은 종교를 완전히 버렸다. 바로 이 때문에 이후 과학의 세계에서 벌어진 일은 그토록 예기치 못한 것이었고, 심지어 추문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과학이 깊은 반전을 겪었기 때문이다.
단 한 세기의 시간 동안, 잇따른 발견들이 유물론의 토대 자체를 금가게 했다. 내가 올리비에 보나시와 함께 쓴 『하느님, 과학, 증거』는 그러한 발견들과 그에 대한 유물론자들의 반응을 다룬다. 이제 창조주를 가정하지 않고 우주를 설명하는 일은 다시금 어렵게 되었고, 어쩌면 불가능해졌다. 시계공은 돌아왔다.
대중은 대체로 알지 못하지만, 유물론의 토대를 뒤흔든 네 가지 격변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세기 중엽에 도래했다. 새로운 과학, 곧 열역학의 탄생이었다. 에너지, 열, 일에 관한 법칙들을 정식화하면서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이 엔진과 효율성이라는 실제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훨씬 더 중대한 것을 발견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닫힌계가 무질서를 향해 비가역적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촛불 하나를 켜 보라. 처음에는 잘 조직된 체계가 있다. 원통형의 밀랍과 새 심지가 그것이다. 몇 시간 동안 타고 나면, 그 질서정연한 체계는 빛, 열, 가스, 잔여물로 해체된다. 외부의 개입 없이는 그 과정이 거꾸로 진행될 수 없다. 이 원리를 우주에 적용하면 불편한 함의가 나온다.
엔트로피가 언제나 증가한다면, 우주는 반복을 통해 끝없이 순환할 수 없다. 우주는 궁극적 종말, 곧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열적 죽음”이라 부르게 된 상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고 있어야 한다. 시간은 방향을 얻게 되었다.
그 함의는 심오했다. 엔트로피에 의해 지배되는 우주는 양방향으로 영원할 수 없다. 미래로 갈수록 무질서는 증가하고, 과거로 갈수록 질서는 증가한다. 그러나 질서는 한없이 증가할 수 없다. 엔트로피의 논리는 시작을 함축한다. 곧 우주가 비가역적 하강을 시작한 최대 질서의 상태가 있었음을 뜻한다. 미래와 마찬가지로 과거도 더 이상 끝없이 열려 있지 않았다. 우리 자신의 태양조차 이 원리를 반영한다. 대략 40억 년 전에 태어난 태양은 유한한 에너지 저장고이다. 태양이 빛나는 것은 자기 연료를 서서히 소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50억 년쯤 지나면 그 연료는 고갈될 것이고, 태양계는 존재를 멈출 것이다.
모든 별에게도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엄청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주의 빛들은 하나씩 사라지고, 어둡고 차갑고 거의 텅 빈 우주가 남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물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의 밀도는 극도로 희석되어, 여기저기 기본입자만이 존재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대략 1세제곱미터당 하나의 입자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경로는 추측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물리학 안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유물론 사상가들을 불편하게 한 것은 단순히 태양계의 궁극적 죽음이 아니라, 그 운명이 함축하는 바였다. 우주가 점차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면, 그것이 한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리하여 열역학은 과학이 이미 넘어섰다고 생각했던 오래된 형이상학적 질문을 다시 열었다.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열역학은 시간의 거스를 수 없는 화살을 드러내면서, 유물론을 오랫동안 지탱해 온 우주관, 곧 끝없는 존재와 영원히 계속되는 물질에 대한 믿음을 조용히 논박했다. 수세기 동안 우주는 무한하고, 자기 유지적이며, 영원한 것으로 상상되어 왔다. 엔트로피는 그 그림을 유한성, 방향성, 쇠퇴의 그림으로 대체했다. 이 발견이 대중 의식 속에서는 대체로 부재하며, 빅뱅과 같은 후대의 우주론 이론들에 가려져 있다는 점은 놀랍다.
두 번째 격변은 20세기 초에 찾아왔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발견이었다. 공간 자체가 모든 곳에서 커지고 있으며, 그 결과 은하들 사이의 거리는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아이가 풍선을 부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 풍선 표면에 펜으로 몇 점을 표시하면, 풍선이 팽창함에 따라 그 점들은 서로 멀어진다. 오랫동안 정적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동적이고, 진화하며, 무엇보다도 나이에 있어서 유한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발전시키고 프리드만과 르메트르가 확장한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들은 놀라운 결론을 가리켰다. 우주는 언제나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공간과 시간 자체가 하나의 기원적 사건, 오늘날 빅뱅으로 알려진 사건으로부터 생겨난 것처럼 보였다.
이 생각은 격렬한 저항을 받았다. 왜 우주의 절대적 시작이라는 전망이 그토록 강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는가? 영원한 우주는 오랫동안 유물론의 제1원리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거의 전 세계는 파르메니데스에게 돌려지는 원리, 곧 “무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원리를 받아들인다. 만일 우주가 참으로 존재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무에서 생겨났거나, 아니면 우주의 시간적 한계에 묶이지 않는 어떤 것에 의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전자는 이 원리를 위반한다. 결국 우주 자체가 영원하든지, 아니면 우주 너머에 영원한 무엇인가가 존재해야 한다. 만일 물질과 에너지가 언제나 존재해 왔다면, 그것들의 기원에 관한 질문은 제쳐둘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적 시작은 그 논쟁을 다시 열었고, 현대 과학이 뒤로 남겨두고자 했던 형이상학적 문제를 회복시켰다.
20세기에 마르크스주의 정권들로부터 전투적 세속 민족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운동들은 종교를 주변화하고, 명시적으로 유물론적 전제에 기초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페레푤킨, 브론슈테인, 무셀리우스, 예롭킨, 누메로프와 같은 뛰어난 과학자들이 살해되었다. 아인슈타인, 보른, 슈테른, 가모프, 타마르킨은 가까스로 제때 탈출했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