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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수호 회의'에 참석한 정상들 |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른바 좌파 연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 수호’와 ‘극우 저지’를 내세우지만, 그 실상은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도덕적으로 매장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시민들을 낙인찍는 정치적 연대에 가깝다. 유럽과 남미를 잇는 이 새로운 좌파 결집은 결코 시대의 해법이 아니라, 실패한 이념의 국제적 재포장일 뿐이다.
오늘날 유럽 좌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반성하지 않는 데 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복지 남발, 공동체의 통합 능력을 넘어서는 무분별한 이주정책, 치안 불안과 문화적 갈등의 심화 등 이미 국민이 체감하는 위기는 분명하다.
그런데도 좌파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잡자고 말하는 세력에게 어김없이 “극우”, “파시스트”, “히틀러의 후예”라는 프레임을 덧씌운다.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을 악(惡)으로 규정하려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식 프로파간다다.
그러나 국가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무너진 국경 개념을 회복하며, 재정의 건전성을 되찾고, 국민의 안전과 정체성을 지키자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곧장 극우가 될 수 있는가. 오히려 모든 비판을 히틀러 프레임으로 봉쇄하는 행태야말로 지적 게으름이며 정치적 폭력이다.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니 낙인으로 침묵시키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유’라는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바보 같은 행태가 유럽 내부의 정치 왜곡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럽 좌파가 정상적인 우파와 애국적 시민의 목소리마저 극단주의로 몰아붙이고, 국가의 자기방어 의지마저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할수록, 그 빈틈을 가장 반기는 것은 바로 러시아의 푸틴, 중국의 시진핑과 같은 전체주의 세력들이다.
서구 내부가 스스로 자멸적 분열에 빠지고, 상식적 보수, 공화주의마저 봉쇄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확신을 얻는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 곧 자신들에게는 더 큰 공세와 선전, 침투와 교란의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신호를 받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전체주의 세력은 언제나 서방의 도덕적 혼란과 정치적 자기부정을 먹고 자라 왔다. 푸틴은 서유럽의 혼란과 분열을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전략적 자산으로 여길 것이며, 시진핑은 유럽 사회가 국경, 안보, 정체성, 주권의 문제를 스스로 말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보며 장기적 자신감을 키울 것이다. 다시 말해 유럽 좌파의 무책임한 행동은 단지 국내 정치의 실수가 아니라, 자유세계 전체의 전략적 기반을 약화시키는 어리석음이다.
그럼에도 좌파는 교훈을 얻지 못한다. 국민의 분노가 왜 커지는지, 왜 유럽 곳곳에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는지 성찰하기보다, 또다시 “우리가 아니면 극우”라는 협박의 언어를 반복한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라 공포 마케팅이며, 책임정치가 아니라 도덕적 사기극이다. 자신들이 초래한 위기의 책임은 감춘 채, 그 위기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위험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수법이기 때문이다.
유럽 좌파는 직시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허황된 국제 좌파연합의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다.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상식적 문제제기마저 극우 프레임으로 매도하는 세력은 결코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것은 고귀한 연대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안에서부터 좀먹고 전체주의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안겨 주는 ‘바보들의 행진’일 뿐이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리베르타임즈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