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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광주 무등산 초입의 스타벅스 대형 매장 한 곳이 문을 닫았다. ‘탱크데이’ 논란과 불매운동 이후 벌어진 일이어서 관심이 쏠렸지만, 회사가 밝힌 폐점 사유는 임대차 계약 종료다. 이를 곧바로 불매운동의 결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비판에도 사실이라는 기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소식을 계기로 광주 사회가 돌아봐야 할 문제는 분명하다. 기업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시민의 소비생활을 정치적 충성도의 잣대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불매할 자유가 있다면 구매할 자유도 있다. 어느 매장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이유로 역사 인식과 도덕성까지 심판하려 든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행위다.
5·18 기념일에 사용된 부적절한 행사 표현에 항의할 수 있다. 기업에 책임 있는 설명과 시정을 요구하는 것도 소비자의 권리다. 그렇다고 그 분노가 언제까지나 지역의 일상과 경제를 지배해야 하는가. 정치가 분노를 거두지 못하게 붙들고, 다른 선택을 하는 시민에게 눈치를 준다면 그 대가는 결국 지역 주민이 치르게 된다.
복합쇼핑몰을 둘러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들이 주말에 쇼핑하고, 공연을 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공간을 바라는 것이 무슨 역사적 배신인가. 복합쇼핑몰의 유무가 광주정신과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교통과 상권, 노동환경과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을 따져야 할 사안을 ‘정신’의 문제로 바꾸는 순간 합리적인 토론은 설 자리를 잃는다.
2030세대의 눈높이에서 질문해 보라. 왜 평범한 생활의 편의를 요구하면서까지 정치적 해명을 해야 하는가. 왜 다른 지역에서는 일상의 선택인 것이 광주에서는 정체성의 시험대에 올라야 하는가.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정해진 답안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살고 내일을 설계할 기회다.
광주정신을 말하는 이들이 먼저 답해야 한다. 그 정신은 시민이 자유롭게 판단하도록 돕는가, 아니면 특정한 판단만 하도록 강요하는가. 권력에 맞서 지켜낸 자유를 기념하면서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는 집단의 허락을 요구한다면 모순이다. 민주주의를 기리는 도시일수록 이견을 가진 시민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 광주와 구별한다며 이름을 길게 늘여 ‘과~앙주’라고 부르는 냉소가 있다. 그러나 도시의 이름이나 주민을 희화화하는 데 머문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친다. 정작 풍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지역의 역사를 독점하고, 그 권위로 시민의 일상을 재단하려는 정치다. 광주 시민 전체를 하나의 생각에 가두는 것부터가 그 정치의 오만이다.
그곳도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시민에게 보장된 소비의 자유와 다양한 생활의 가능성이 광주에서만 눈칫밥을 먹을 이유는 없다. 불매에 참여하는 시민도, 참여하지 않는 시민도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기업을 비판할 권리와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는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이제 ‘광주정신’이라는 말 앞에서 질문을 멈추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말에 기대어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시민은 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청년의 기회는 얼마나 넓어졌는가. 다른 의견을 말할 자유는 얼마나 보장되는가.
기억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기억을 관리한다는 사람들이 시민의 미래까지 지배할 권리는 없다. 광주에 필요한 것은 커피 한 잔과 쇼핑할 권리에까지 훈계하는 정치로부터의 해방이다. 시민의 자유를 넓히지 못하는 ‘정신’이라면, 그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위부터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論 說 委 員 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