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는 영국 성공회에 결코 유쾌한 시기가 아니었다. 먼저 세인트폴 대성당은 크리스토퍼 렌 경의 걸작인 대성당을 런던의 한 나이트클럽이 행사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어 9·11 테러 25주년을 맞아 캔터베리 대주교는 무슬림 성직자 하피즈 타히르 아슈라피에게 종교 간 화합상을 수여했다가, 며칠 뒤 그가 오사마 빈 라덴을 찬양한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철회했다. 교회 지도자들이 간단한 구글 검색이라도 해보았다면 쉽게 찾아낼 수 있었을 발언이었다.
물론 아슈라피는 자신의 발언이 문맥에서 떼어내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그 ‘문맥’이란 이렇다. 2007년, 법을 준수하는 영국 시민이자 저명한 작가인 살만 루슈디가 기사 작위를 받게 되자, 아슈라피가 의장을 맡고 있던 파키스탄 울레마 평의회는 빈 라덴에게 ‘사이풀라(Saifullah, 하느님의 검)’라는 칭호를 수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슈라피는 이를 “무슬림 전사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칭호”라고 불렀다.
이제 앤디 번햄 총리가 가톨릭 신자와 유대교 신자도 영국 성공회 주교 임명 절차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번햄은 가톨릭 신자이며, 총리로서 주교 후보자들의 이름을 국왕에게 올리는 책임을 맡는다.
19세기까지 가톨릭 신자와 유대교 신자는 의회를 포함한 공적 생활에서 배제되었다. 이러한 제한은 1829년의 「가톨릭 해방법」(Roman Catholic Relief Act)과 1858년의 「유대교도 해방법」(Jews Relief Act)을 통해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 법들은 여전히 가톨릭 신자나 유대교 신자인 총리가 주교 후보를 왕실에 추천하는 것을 금지했다.
실제로 이것이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번햄은 다우닝가 10번지에 입주한 최초의 평생 가톨릭 신자 총리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었지만 영국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상하게도(아마 과거에는 그런 상황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무신론자인 키어 스타머나 힌두교 신자인 리시 수낵은 교회 인사와 관련해 국왕에게 조언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이 절차 자체도 상당 부분 상징적이다. 2007년 이전에는 총리가 왕실 지명위원회로부터 두 명의 후보를 받아 그중 한 명을 선택해 국왕에게 올렸다. 그러나 이제 총리는 단 한 명의 이름만 전달받는다.
그럼에도 이번 법안은 의미가 있다. 첫째, 번햄에게는 주교 임명 문제보다 훨씬 더 시급하게 시간을 써야 할 사안들이 많다. 이것은 상징 정치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상징인가?
노동당은 도심 지역 유권자뿐 아니라 어느 정도 급진화된 무슬림 유권자층에도 정치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가자지구에 관한 수사는 지금까지 성공회 고위직 임명에 적용되어 온 개신교인·무신론자·힌두교인의 사실상 독점 구조를 깨는 것보다 더 많은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크다. 자신들의 자녀가 자라서 왕실 지명위원회의 ‘영광스러운 심부름꾼’조차 될 수 없다는 데 분노하는 가톨릭이나 유대교 부모들이 중요한 선거 집단인 것도 아니다.
둘째, 가톨릭 신자인 한 친구가 내게 이것이 종교개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말하듯, 그 말은 이미 오래전에 마구간을 떠났다.
세속 국가가 교회 운영과 전례 문제에 개입하는 현실은 사실 영국 종교개혁 자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16세기와 17세기의 주요 갈등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국교회(성공회)라는 존재는 종교적 다양성이 커질수록 공적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영국 성공회의 지도부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 난제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그때그때 영국 문화(적어도 진보적 영국 문화)가 중시하는 가치들에 종교적 외피를 씌워왔다. 관용, 포용성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들은 굳이 그리스도교적 토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종종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과 도덕적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형태로 변질되어 왔다.
역설적으로 말해, 정통 가톨릭 신자들이라면 지난 수 세기 동안 성공회 안에서 벌어져 온 많은 일들에 비하면 오히려 신선한 변화가 될 것이다.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 곧 하느님의 존재에서부터(성공회 사제 돈 큐핏의 비실재론적 신학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삼위일체, 강생, 부활에 이르기까지, 교리를 제대로 배운 가톨릭 신자가 현재 이 일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은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를 찾기란 어렵다.
물론 영국 성공회가 그러한 사람들이 단순한 절차상의 역할을 넘어 실제적인 역할을 맡도록 허용함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교회 안에서 선례로 굳어진 수많은 일들보다 더 우스운 것도 아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그것은 영국 성공회가 이제 사실상 하나의 행정기관, 곧 국가의 한 부속기관일 뿐이며 의례적 의미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존재가 되었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해 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현 캔터베리 대주교가 조력 자살 문제에 관해서는 전임자보다 훨씬 더 그리스도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이라면, 참으로 ‘작은 것들의 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 지도부는 인종차별의 악, 자본주의의 악, 생태적 재앙 등 진보적 계층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계속 설교할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사명을 저버리게 된다. 곧 신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적 순간의 지나가는 현상들로부터 하느님과 복음의 위대한 진리로 이끄는 사명이다.
번햄이 이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실 지명위원회와 국왕 사이를 잇는 잠재적 중개자들의 범위를 넓히는 것 이상의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법이 영국 성공회의 개신교적 성격을 훼손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영국 성공회는 이미 여러 세대 전에 스스로 그것을 훼손해 버렸기 때문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