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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58] 왜 AfD는 승리하는가 - ④

2026-09-11 07:0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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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드웰 Christopher Caldwell is a contributing editor of the Claremont Review of Books. 기고 편집자


역사적 기억에 맞서

젊은이들은 AfD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청년 조직을 만들었다.

2017년 선거가 치러지던 해 초, 당의 초기 당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젊은 교사 비외른 회케(Björn Höcke)는 드레스덴에서 이들 청년조직 가운데 하나를 상대로 연설했다. 그 연설은 이후 줄곧 AfD의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돼왔다.

회케는 서독에서 태어났지만 기질적으로는 동부에 강한 유대감을 느꼈고, 튀링겐주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독일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드레스덴의 프라우엔키르헤(Frauenkirche, 성모교회) 재건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 애국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독일이 스스로를 긍정하는 작은 불꽃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표면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아직까지 우리의 정신 상태는 완전히 패전국 국민의 그것입니다. … 우리 독일인은 …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도 한복판에 수치의 기념물[ein Denkmal der Schande]을 세운 국민입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위대한 은인들, 세계적으로 이름난 철학자들, 음악가들, 그리고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천재적인 발견자와 발명가들을 가르치는 대신 … 그 역사, 곧 독일의 역사를 폄하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영어권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이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지 아버지와 삼촌 세대가 들려준 설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연설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회케가 말한 ‘수치의 기념물’은 베를린 중심부 약 5에이커에 걸쳐 엄숙하고 극적인 석조 구조물들이 펼쳐져 있는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를 가리킨다.

그러나 울리히 지크문트처럼 1990년대 동독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게 들릴 수도 있다. 그들은 히틀러뿐 아니라 두 세대에 걸친 공산주의 독재로 인해 풍요로운 문화적 유산과 단절된 세대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독일의 역사 가운데 영광스럽고, 경건하며, 건전한 것들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필요는 절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들에게 회케가 기성 여론의 금기를 어긴 것은 단지 예의에 어긋난 행동 정도로 보일 수도 있다. 회케는 급진 우파 정치인이고 어느 정도는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열정적인 연설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디까지나 지방정치인이다. 베를린 연방하원의원이 아니라 지방도시 에르푸르트의 튀링겐 주의회의원이다.

그의 연설은 그가 말한 ‘수치’가 홀로코스트 그 자체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홀로코스트를 지나치게 과잉 추모하는 문화를 의미하는지 모호하다. 그러나 한 정치인이 9년 전에 한 연설에서 나온 단 하나의 모호한 발언이 여전히 AfD에 대한 가장 중요한 ‘증거물 제1호’로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 민주주의의 품위와 규범을 침해하는 사례가 AfD 당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드물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AfD는 13쪽짜리 ‘양립 불가 목록’을 유지하고 있다. 그 목록에는 당원이 가입해서는 안 되며 과거에도 가입한 적이 있어서는 안 되는 정당과 운동들이 열거돼 있다. 독일의 모든 정당이 이런 규칙을 갖고 있지만 AfD의 부상은 이러한 규칙들의 실효성을 약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올해 작센안할트에서 CDU는 AfD와도 거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 당시 AfD의 지지율은 43%였다 — 좌파당과도 협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좌파당의 지지율은 13%였다. 두 정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유권자의 확고한 과반이다.

결국 CDU는 사실상 유권자들에게 자신들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형태의 정부에 자신들을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셈이었다. 널리 알려진 사회과학자 롤프 페터 지퍼를레는 회케의 2017년 연설이 있기 전해에 세상을 떠났다. 지퍼를레는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다룬 학자였다.

그의 관심사는 광업의 환경사, 고대 이후 전쟁·기술·정치의 상호작용 — 이 주제에 대해서는 무려 1,500쪽짜리 책을 썼다 — 그리고 20세기 초, 즉 히틀러 이전 시대의 독일 보수주의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마지막 관심사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일종의 친화성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2017년 사후 출간된 그의 저작 두 권은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우파가 아닌 이들에게는 우려를 안겼다. 그가 회케의 주장을 보다 ‘점잖고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salonfähig)’ 방식으로 제시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기성질서를 거스르는 계간지 투물트(Tumult) — 스스로를 “합의를 교란하기 위한 잡지”라고 소개한다 — 와 연계된 출판사 마누스크립툼은 지퍼를레의 『이민 문제』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지퍼를레는 자라친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대규모 이민은 이미 완성된 복지국가와 양립할 수 있는가? 지퍼를레의 다른 책 『피니스 게르마니아(Finis Germania)』는 훨씬 더 불편한 답을 제시했다. 이 책은 그의 이전 저작을 토대로 한 메모들을 모은 것으로, 독일 정치문화의 쇠퇴에 초점을 맞췄다.

책은 작센안할트에 있는 AfD에 우호적인 출판사 안타이오스(Antaios)에서 출간됐다. 안타이오스는 그 자체로 만만치 않은 수필가이자 이론가인 괴츠 쿠비체크가 설립했다.

회케와 그의 당내 계파에 가까운 쿠비체크는 대단히 광범위한 이념적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제체시온(Sezession)이라는 계간지를 발행하고, 이 잡지의 필진과 여러 정치인·이론가들이 서로 논쟁을 벌이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출판사 안타이오스도 이끌고 있다.

안타이오스는 그 밖에도 수준 편차가 매우 크기는 하지만 날카롭고 짧은 책들을 시리즈로 출간해왔다. 이 책들은 흔히 그동안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던 사회현상을 해부하거나 급진적인 역사적·정치적 주장을 제시한다. 지퍼를레의 『피니스 게르마니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런 책들은 지금 약 100권에 이른다.

지퍼를레의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형성한 기억과 참회의 문화는 그 자체로는 존경할 만한 것이었지만, 새롭게 위험해진 세계화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바로 이 기억과 참회의 문화 때문에 독일은 2015년 자신을 위협한 이민자 물결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다문화주의 실험에 뛰어들었다. 지퍼를레의 인상적인 표현을 빌리면 독일은 “도덕적으로 자신의 형편을 넘어선 삶을 살고 있었다.” 이 책은 스캔들을 일으켰다.

『피니스 게르마니아』는 ‘이달의 논픽션 도서’ 순위에서 9위까지 올랐다. 그러자 그 순위를 주관하던 기관들이 아예 순위 발표를 중단해버렸다. 제체시온과 투물트 주변에 모여 있던 독일 우파의 가장 날카로운 일부는 이제 일종의 전위대 같은 분위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들은 심지어 스스로 AfD에 가깝다고 인정하지 않았을 주류 언론들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독일 독자들은 보다 이념적으로 다양한 시각을 접하기 위해 스위스 언론을 찾곤 했다. 스위스 언론은 독일의 국가적 죄책감을 청산하려는 작업에 동원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보수적이었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 문화적 이슈에서 점점 진보적인 입장으로 이동하자, 독일 보수주의자들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Neue Zürcher Zeitung)을 찾았고, 더 나아가 취리히에 기반을 둔 보다 노골적인 포퓰리즘 성향의 잡지 디 벨트보헤(Die Weltwoche)까지 읽기 시작했다.

비교적 보수적인 월간지 키케로(Cicero)는 문화 문제를 다루기 위해 2004년 창간됐다. 전 비르트샤프츠보헤(WirtschaftsWoche) 기자 롤란트 티히는 2014년 *티히스 아인블릭(Tichys Einblick)*을 창간했다. 이 매체들이 AfD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AfD 때문에 겁에 질려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시대 변화의 징표였다.

2017년 선거에서 AfD는 단지 의회에 진입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무려 94석을 차지했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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