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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457] 왜 AfD는 승리하는가 - ③

2026-09-10 07:15 | 입력 : 리베르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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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드웰 Christopher Caldwell is a contributing editor of the Claremont Review of Books. 기고 편집자


이민 위기

독일과 유럽연합이 망명 신청자와 다른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는 기본 규칙은 점점 완화되고 있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을 피해 수천 명의 이주민이 유럽으로 행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르켈은 유럽 전역을 이끌며 수십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즉흥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결정을 주도했다.

그녀의 표어는 “Wir schaffen das”, 즉 “우리는 해낼 수 있다”였다.

이 시리아인들 뒤에는 곧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 온 기회주의적 이민자들이 합류했다. 메르켈은 약 80만 명이 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실제로 몇 명의 이민자가 들어왔는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이민 위기 직전인 2014년 독일의 외국 출생 인구는 810만 명이었다. 메르켈이 퇴임한 이듬해인 2022년에는 그 수가 1,340만 명에 이르렀다. 이 같은 대규모 유입이 시작된 시점 또한 좋지 않았다.

2015년은 파리에서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들이 잡지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의 편집진 상당수를 살해한 사건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그해는 새해 전야 쾰른 도심에서 수백 건의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 끝났다. 공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 사건들의 대부분은 ‘이민 배경을 가진’ 집단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적어도 수사적 차원에서 AfD는 이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잘되어 있었다. 창당 당시 AfD는 미국 공화당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만한 연합체였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애국적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대안’을 내세운 AfD의 약속은 거의 즉시 다양한 반항적 인사들, 보복주의자들, 강경 보수주의자들을 끌어들였다. 그것은 이 정당의 영광이면서 동시에 위험이었다.

베른트 루케는 이민을 주로 경제적 문제로 바라봤다. 반면 프라우케 페트리는 이민을 사회 조직과 공동체 구조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대안’이라 부르는 정당이라면 대규모 이민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은 페트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5년 페트리는 루케를 축출했고, AfD의 상승세가 시작됐다. 그리고 오늘날 작센안할트 선거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AfD의 평판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 역시 이때부터 시작됐다.

2015년 AfD는 권력과 순수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그 선택은 당을 거의 두 동강 낼 뻔했다. 루케의 지지자들은 일종의 취미 정당을 만들고 있었다. 경제학을 활용해 존중받는 여론의 일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정당이었다. 반면 페트리의 지지자들은 하나의 운동, 하나의 봉기를 만들고 있었다.

페트리는 당의 양쪽 진영을 연결하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서독의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대도시에서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업가였지만, 동시에 동독 출신이었다. 그녀의 동독 출신이라는 배경은 중요했다.

왜냐하면 이민 위기에는 특별히 동독과 관련된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독 지역은 비어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작센안할트의 비터펠트는 인구의 절반을 잃었다. 이전까지 대규모 이민을 경험하지 않았던 이런 도시들은 허가 없이 독일로 걸어 들어온 시리아인과 파키스탄인들을 정부 당국이 수용하기에 매력적인 장소가 됐다.

갑자기 이들은 주민들이 빠져나가 비어가던 동독 지역의 공공주택에 대거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동독에는 다소 폭력적인 성격의 페기다(Pegida)라는 운동이 반이민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 이름은 ‘서구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atriotic Europeans against the Islamization of the West)’의 약칭이었다.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든 AfD는 이런 운동들과 어느 정도까지 가까이 연대해야 하는지를 놓고 내부 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은 자연스럽게 대중들 사이에서 AfD가 사실상 두 개의 정당이라는 인식을 낳았다.

동부의 AfD와 서부의 AfD, 급진적 AfD와 온건한 AfD, 유로화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AfD와 이민자 문제에 ‘집착하는’ AfD, 좋은 AfD와 나쁜 AfD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지고 있던 일은 하나의 지적 프로젝트가 — 물론 그 구성원 모두가 지식인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 하룻밤 사이에 대중정당으로 변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로화가 국가주권에 가하는 도전에 대한 관심은 이제 민족의 생존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AfD의 새로운 기획이 독일에서 가장 엄숙하게 여겨지는 금기와 충돌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금기는 독일인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국가로, 하나의 국민으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아니 과연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에 관한 것이었다.

독일은 여전히 거의 모든 사람이 거의 모든 제도로부터 일종의 ‘교리교육’을 받는 나라다. 그 내용은 바로 이러한 금기를 어기는 것이 과거 독일을 생지옥으로 만들었고 국제사회의 추방자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메르켈이 얼굴을 찌푸리며 독일 국기를 흔들기를 거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수주의는 위험할 정도로 무책임하다. 반(反)애국주의야말로 진정한 독일식 애국주의다. 메르켈의 기독교민주연합(CDU)은 바이에른의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CSU)과 함께 독일의 ‘방어적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데 거의 헌법적 역할을 해왔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바이에른 정치를 지배했고 자신도 거의 독일 총리가 될 뻔했던 프란츠요제프 슈트라우스(Franz-Josef Strauss)는 자신의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일종의 덕성 있는 온건주의로 바꾸어놓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합(CDU·CSU)의 오른쪽에는 민주적으로 정당한 세력이 존재할 수 없다.” 슈트라우스에게 이 말은 CDU와 CSU가 정말로, 정말로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왜냐하면 그 밖에는 보수주의자들을 정당하게 대표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자였고, 포퓰리스트였으며, 전통주의자였다. 그러나 메르켈은 슈트라우스의 이 명제를 정반대 방향으로 해석했다.

CDU보다 오른쪽에 있는 모든 경쟁 정당이 그 자체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면, 게임이론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CDU를 지속적으로 왼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메르켈은 동성혼을 도입했고 — 자신은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지만 — 원자력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했으며, 징병제를 중단하고, 국경을 개방했다. 본질적으로 자기 정당의 역사적 반대자들이 추진해온 정책 프로그램을 실행한 셈이었다.

버림받았다고 느낀 보수주의자들에게 메르켈은 단지 선의로 통치하다 몇 가지 실수를 저지른 지도자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그녀는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가장 냉소적인 총리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AfD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AfD 스스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어휘 자체가 쉽게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AfD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는 여러 해가 걸릴 것이며, 그 작업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어색하고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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