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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제공 |
벨기에에서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는 중국계 남성이 구금되면서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 활동에 대한 유럽의 경계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벨기에 검찰에 따르면 중국과 벨기에 이중국적을 가진 52세 남성이 반도체 기술과 관련한 첩보 활동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남성은 벨기에 반도체 업체 BelGaN에서 연구개발 분야 관리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검찰은 그가 BelGaN이 개발하던 질화갈륨(GaN) 반도체 관련 특허와 영업비밀을 중국으로 불법 이전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질화갈륨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전력 효율성이 높아 전기자동차와 항공우주, 통신은 물론 군사 분야에도 활용할 수 있는 전략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검찰은 용의자가 벨기에 기업에서 핵심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하면서 중국에서 유사한 생산 활동을 하는 기업의 책임자로도 활동한 정황을 주목하고 있다.
해당 중국 기업은 용의자가 BelGaN에서 근무한 지 수개월 뒤 설립됐으며 중국 투자펀드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벨기에 기업의 기술과 인력을 활용해 중국에 사실상의 ‘복제 기업’을 만들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다.
용의자는 지난 5월 10일 브뤼셀 자벤텀 국제공항에서 베이징행 항공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됐으며, 검찰은 또 다른 용의자 1명도 추적하고 있다.
수사 대상에는 첩보 활동뿐 아니라 범죄조직 가담, 회사 자산 횡령, 영업비밀 불법 유출 등의 혐의가 포함돼 있다.
파산한 기업 노린 기술 이전 의혹
BelGaN은 벨기에 동플랑드르 오우데나르더에 위치한 반도체 기업으로, 실리콘 반도체에서 차세대 질화갈륨 반도체 생산으로 전환해 왔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자금난을 버티지 못하고 2024년 7월 파산했다. 당시 수백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으며, 회사가 축적한 첨단기술과 생산설비의 향방을 놓고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수사를 통해 파산 전후로 핵심 기술이 중국 측 경쟁기업에 넘어갔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단순한 기업비밀 유출 사건을 넘어 국가 차원의 경제안보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벨기에 정보당국이 경고한 ‘미러 기업’
이번 사건은 벨기에 정보당국이 중국의 기술 확보 방식으로 지목해 온 이른바 ‘미러 기업’ 전략과도 닮아 있다.
벨기에 국가안보국은 중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 바이오 등 전략기술 분야에서 서방을 추격하기 위해 연구원 파견, 투자, 기업 인수, 핵심인력 확보와 함께 서방 기업과 유사한 회사를 중국에 설립하는 방식 등을 활용하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
기술력이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서방 기업에 접근해 인력과 노하우를 확보한 뒤 중국 내 유사기업에서 이를 상업화하거나 전략산업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브뤼셀에는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의 정치·안보 중심지인 동시에 첨단산업과 연구기관이 밀집한 벨기에가 중국과 러시아 등 외국 정보기관의 주요 활동무대로 지목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반도체 경쟁이 이제 단순한 기업 간 기술경쟁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정보전과 경제안보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중국의 움직임이 정상적인 투자와 연구협력을 넘어 산업스파이와 영업비밀 탈취로 이어졌는지, 벨기에 당국의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