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내게 어디에서 인턴으로 일하느냐고 물을 때면, 나는 그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루터교 목사가 창간했고, 그 목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가톨릭 사제가 된 종교와 공적 생활에 관한 잡지, 《First Things》입니다.” 그러면 거의 언제나 비슷한 질문이 돌아온다. “예시바대학교에 다니는 유대인 여학생이 왜 그런 곳에서 일하려는 거죠?”
이 질문에는 내가 이제는 받아들이지 않게 된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다. 우리는 유대인의 안전을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그리스도교와 분리하고, 공적 영역의 종교와 분리하며, 다수 종교에 우월한 지위를 부여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제도와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 결과 진정한 만남과 참여마저 배신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 유대인이자 예시바대학교 학생인 나의 정체성은, 강력한 그리스도교적 목소리를 지닌 초종교적 잡지에서 가장 온전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
《First Things》는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한 편집자가 자연법과 보조성의 원리에 관한 원고를 검토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때가 기억난다. 그 글에 담긴 사상은 나와는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지만, Halakha(할라카, 유대법)가 전혀 다른 교실에서 내가 살아가도록 가르쳐 준 바로 그 영역을 향하고 있었다.
자연법은 이성의 보편적 구조에 그 주장의 근거를 두며, 할라카는 계시의 특수성에 그 근거를 둔다. 그러나 두 전통 모두 도덕의 세계를 효용의 계산이나 시장의 논리에 넘겨주기를 거부한다. 탈무드 연구와 할라카의 범주에 뿌리를 둔 나의 유대교적 교육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토대에 관한 이러한 대화에 방해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사고를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와 같은 유대인들은 《First Things》에서 일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도덕적 진리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공유한다. 벌거벗은 공론장은 그러한 진지함을 해체하려 하지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두 전통은 모두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가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러한 깨달음은 몇 주 뒤 더욱 깊어졌다. 나는 안식일 때문에 늦게까지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한 편집자에게 말했다. 어색한 분위기도 없었고, 별도의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그 의무를 이해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First Things》는 내가 유대인 공동체 밖에서 경험한 첫 직장이었다. 그리고 직장이 나의 종교적 준수를 일정상의 불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존중해야 할 숭고한 헌신으로 받아들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스도교적 신앙 표현에 대한 유대인들의 경계심은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며,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서구 역사의 대부분에서 십자가는 단순히 신앙의 상징만이 아니었다.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 그리고 십자가의 그늘 아래에서 자행된 Pogrom(포그롬, 학대)을 통해 십자가는 유대인들이 겪은 고통의 도구이기도 했다.
유대계몽주의인 하스칼라가 유럽을 휩쓸었을 때, 그 지지자들은 의도적인 선택을 했다. 그들은 안전이 세속주의에 있으며, 시민 생활에서 종교를 제거하는 데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스도교를 성당과 교회의 벽 안에 가두고 개인의 신앙으로 제한할 수 있다면, 유대인들은 세속화된 유럽의 탁 트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숨 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실패했다. 해방된 유럽 유대인들은 세속적 민족주의가 끔찍할 정도로 효율적으로 대량 학살을 자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히틀러의 인종법은 동화된 유대인이나 세속화된 유대인에게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어적 반사작용은 계속 남았다.
미국 유대인 지도부는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엄격한 정교분리를 옹호하면서, 공적 생활에 종교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유대인의 생존을 조용히 위협하는 위험으로 간주했다. 그러한 논리는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을 세속화함으로써 자신들을 보호하려 했던 유대인 공동체는 결국 자기 자신을 세속화하고 말았다. 엘리엇 에이브럼스는 1997년 《First Things》에 발표한 글에서 그 대가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미국 유대인들은 종교적 실천을 대체 신앙들로 바꾸어 놓았다. 예언자적 유대교로 포장된 좌파 정치,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억, 민족적 정체성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 없이도 공동체를 결속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워졌다.
통계는 슬픈 이야기를 들려준다. 정통파가 아닌 유대인들의 타종교인과의 혼인율은 현재 70퍼센트를 넘어섰고, 회당 회원 수는 유대교의 모든 분파에서 감소해 왔다. 에이브럼스의 표현대로, 이런 종류의 유대인 정체성은 “가짜 신앙이며, 일시적인 현상”이다.
이 잡지는 리처드 존 뉴하우스 신부가 창간했다. 그는 자신이 “벌거벗은 공론장”이라고 부른 현상을 경고했다. 종교의 목소리가 제거된 시민 생활은 비어 있는 상태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대체 종교로 채워진다. 곧 성스러움의 제의를 걸친 이데올로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뉴하우스는 민주주의가 종교 공동체들이 제공하는 도덕적 토대를 필요로 한다고 믿었다. 옳고 그름에 관한 공통의 언어가 없다면, 공론장은 오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장으로 변한다. 그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게 벌거벗은 공론장에 맞서 함께 서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랍비 조지프 B. 솔로베이치크는 1964년 발표한 논문 「대면」(Confrontation)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공동체 차원의 신학적 대화를 나누는 일을 경계했다. 지속적인 종교 간 논쟁이 유대교의 고유한 종교적 신념을 흐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모든 형태의 교류를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주의의 위협”에 맞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는 《First Things》에서 하는 나의 일이 바로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시바대학교의 창립 원리인 ‘토라 우마다’(Torah U’Madda), 곧 토라와 세속 학문의 종합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담고 있다. 진정한 유대인의 삶을 살기 위해 더 넓은 지성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격리할 필요는 없다. 자연법과 정치 질서에 관해 그리스도교 전통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은 자신의 유대교 신앙을 타협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탈무드가 ‘호크마 바고임’(chokhmah ba’goyim), 곧 “민족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지혜”라고 부르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이는 람밤, 곧 마이모니데스 자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유대법의 체계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존중했던 의무다.
《First Things》는 유대인들에게 문 앞에서 자신의 유대교 신앙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이 잡지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다룰 때와 똑같은 엄밀함으로 할라카와 유대 신학, 히브리 성경에 관한 글을 게재한다.
데이비드 노박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의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하느님을 공적 생활에서 완전히 제거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세속주의다. 공격적인 세속주의에 맞서는 투쟁에서 회당과 교회 사이의 거리는, 그 어느 쪽도 유배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동의 확신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하다.
미국의 시민 생활에 온전히 참여하기 위해 차이를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그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이다. 침례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와 정통파 유대인이 각자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선에 관해 함께 논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신감이다.
종교적 신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함께 벌이는 이러한 논쟁이야말로 미국적 실험이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First Things》가 창간 이래 계속해서 마련해 온 대화의 장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