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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북한이 13일과 14일 평양에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제8차 대회를 열고 여성들을 또다시 당의 정책 수행과 주민 통제를 위한 정치적 동원 대상으로 규정했다.
조선신보는 이번 대회를 “주체혁명의 새로운 앙양기”를 열고 여성동맹의 “전투력과 활동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정치 행사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여성의 권익 신장이나 생활 개선, 가정폭력 방지, 노동환경 개선과 같은 실질적인 여성 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여성동맹이 노동당의 “인전대”이자 “믿음직한 방조자”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충성 요구만 반복됐다.
여성 조직이라면 마땅히 여성의 권리와 존엄, 복지를 대변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 여성동맹에 부여된 역할은 그와 정반대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권력에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명령을 여성과 가정에 전달하고, 주민들의 사상과 생활을 감시하며, 각종 충성사업과 노력 동원에 참여시키는 하부 통제조직에 가깝다.
북한이 여성동맹을 “사상교양단체”라고 강조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여성 개개인의 자유로운 판단과 사회 참여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유일사상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가정과 지역사회에 주입하는 것이 조직의 핵심 임무라는 뜻이다.
여성은 독립된 시민이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선전원이며, 가정은 사적 생활의 공간이 아니라 사상통제의 최말단 기지로 취급되고 있다.
특히 북한 여성들은 경제난 속에서 생계의 상당 부분을 떠맡고 있다. 국가 배급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여성들이 시장 활동과 장사를 통해 가족을 부양해 왔다. 그러면서도 직장과 가정, 사회적 동원과 정치학습까지 감당해야 하는 이중·삼중의 부담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여성들의 희생과 노동을 정당하게 평가하거나 제도적으로 보호하기보다 ‘애국의 열정’, ‘혁명적 열의’, ‘투쟁기세’라는 정치 구호로 포장한다. 여성의 고통을 해결해야 할 권력이 오히려 그 고통을 충성과 헌신의 증거로 이용하는 셈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노동당 제9차 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여성동맹의 역할도 집중적으로 논의됐다고 한다. 이는 여성동맹이 독자적인 사회단체가 아니라 노동당의 결정을 집행하는 종속조직임을 다시 확인시킨다. 조직의 지도부와 대표 역시 자유로운 경쟁과 선거를 통해 여성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당의 승인과 통제 아래 선발된 간부들이다.
북한 당국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남녀평등이 실현됐다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남녀평등은 여성을 정치적 동원에 많이 참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유롭게 말하며, 부당한 폭력과 차별에 저항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는 지도자를 비판할 자유도, 독립적인 여성단체를 만들 자유도, 부당한 국가 동원과 노동을 거부할 자유도 없다. 권력 앞에서 침묵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 확대’라는 구호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제8차 대회는 북한 여성의 권익을 위한 대회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들의 생활과 희생을 당의 정치적 자원으로 조직하고, 가정과 지역사회에 대한 사상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충성 결의 행사였다.
북한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치학습과 노력 동원, 충성맹세가 아니다.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 권리, 폭력과 착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이동하고 말하고 선택할 자유다.
여성의 이름을 내세우면서도 여성의 목소리와 권리를 철저히 배제하는 조직이라면, 그것은 여성단체가 아니라 세습독재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통제기구일 뿐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