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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A 가톨릭 78] '라너'적인 놀라움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Washington, D.C.’s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워싱턴 D.C. 윤리 및 공공정책 센터 수석 연구원)

칼 라너 신부(S.J., 1904–1984)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가톨릭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전통주의 성향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라너는 일종의 ‘분열된 인격’을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독실한 슈바벤 출신으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노트르담대학교(ND)의 무대에 앉아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하며, 다른 학자가 영어로 자신의 강연문을 대독하는 것을 듣던 인물이었고, 같은 자리에서 어떤 젊은이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신학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덴칭거(Denzinger, 교회 교리를 총망라한 700쪽짜리 문헌 모음집)를 암기하라"고 답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라너는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제자로서, 한 세대의 가톨릭 사상가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라이트(Lite) 가톨리시즘(전통적인 가톨릭교보다 덜 엄격하거나 교리적으로 덜 엄격하다고 여겨지는 가톨릭교의 한 형태를 지칭하는 용어)’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신학적 북극성이었으며, 여러 면에서 오늘날 독일의 “시노달 경로(Synodaler Weg)”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이런 라너가 1982년 한 인터뷰에서 교회 내의 보수화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그가 왜 교회를 떠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매우 단호한 답변을 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왜 교회 안에 머무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혐오스럽게 여긴다. 진정한 그리스도 신자는 교회에 대해 시혜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남을까, 나갈까’를 저울질할 수 없다. 교회와의 관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며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교회의 사람이라 주장하며 교회를 비판하는 이들에게서 이 본질이 느껴져야 한다.

나로서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 열정적이고, 맹렬하고, 심지어 격앙되고 광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것이 가톨릭 신자의 비판이라면, 그 비판 속에서 ‘나는 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영원한 구원을 얻고자 한다’는 태도가 보여야 한다. 잊지 말라. 진정한 가톨릭 비판가는 교회 안에서 ‘교회’를 비판하는데, 그것은 교회를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가 단순히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종교 단체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제들, 주교들, 어쩌면 교황청에 대한 분노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 교회 안에서만—삶과 죽음의 순간에—예수님, 곧 영원하신 하느님의 신뢰할 수 있는 증인을 붙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에게는 그 분노는 궁극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톨릭 신앙 안에서 자라났고, 솔직히 말하자면 신앙의 위기를 겪은 적은 없다. 하지만 동시에 고백하건대, 베드로의 배(Barque of Peter)의 ‘로마 기관실’에서 작동되는 관료적 구조는 때때로 내 안에 영적 건조함을 낳는 일시적인 냉소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칼 라너의 일면—그리스도론을 주제로 50년 전 논문을 썼을 정도로 존경했던—을 떠올리며, 성사(聖事)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이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약속된 은총의 구체적 말씀은 세례를 통해 평생에 걸쳐 주어졌다. 성체성사 안에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거룩하신 하느님의 사건으로 기념되고, 이 교회 안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영원하신 자기계시의 순수한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인생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약속받는다.”

가톨릭 신앙이 본질적으로 교회적(에클레시아적)이라는 점은, 25년 전 대희년이었던 2000년에 신앙교리성(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이 「도미누스 예수스(Dominus Iesus, '주 예수님')」라는 선언을 통해 명확히 재확인했다.

이 선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 가르침이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신념을 다시금 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예수님이 단지 어떤 추상적 신적 ‘구원의 의지’의 하나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 곧 역사 안에서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구원임을 선언한 것이다.

2025년 희년(Jubilee of Hope)을 맞아, 그리고 아부다비에서 발표된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의 모호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시 「도미누스 예수스」의 핵심 교훈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 하느님은 유일하시며, 따라서 구원의 역사도 오직 하나뿐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시라면, 그분은 모든 이의 주님이시며, 그분의 주권은 받아들여지든 아니든 여전히 유효하다.
· 하느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거부하지 않으신다.
· 구원받은 모든 이들은—그들이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든 아니든—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
· 교회는 하나이며,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 개의 몸을 지니지 않으신다.
·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의 역사적 실현의 가장 충만한 표현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믿는다면—나처럼—당신은 선교적 제자로 부름받은 복음적 가톨릭 신자이며, 하느님의 성육신하신 아드님과의 우정을, 당신이 받은 선물로서 세상에 전하는 사명에 초대받은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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