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대한민국 자살유도자(自殺誘導者)들

- 지구상 군사력 뒷받침 없는 외교는 존재하지 않아! - 격변하는 국제정치 구조 속, 대한민국은 언제든 소멸될 수 있어!! - 몽상가들이여, 핵을 가진 북한의 적화통일을 원하는가!!!
강 · 량 


 

범(虎) 내려온다.

우리 속담에 “범(虎) 내려온다”, 라는 말이 있다. 요즘 폭발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트롯열풍을 통해 노래로서도 잘 알려져 있는 말이다.

즉, “큰 힘에 의해서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온다”는 이야기다.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특히 북한 핵과 미사일을 이고 사는 대한민국의 위기 상황을 이 속담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자국의 국익을 대변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이런 위급한 환경을 스스로 조장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나라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백척간두의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잡아먹을 그 ‘범(虎)’은 누구일까? 아직은 모른다. 중국과 북한이 될지, 아니면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이 될지, 또 아니면 그렇게 악랄한 정치프레임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주적(主敵)’으로 만들어 놓은 ‘일본’이 될지 말이다.

결국 최종적인 ‘범(虎)’의 모습은, 국제정치가 갖는 독특한 힘의 논리를 부정하고, 오로지 ‘종북(從北)’과 ‘친중(親中)’으로 달려가는 문대통령의 숭고한 ‘가짜신념’에 달렸다. 항상 본심은 간교하게 숨기고, 마치 절벽에서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외교연출을 해대는 문대통령의 ‘국익실종’, ‘대한민국 파괴’의 신념은 ‘진심의 얼굴’을 항상 가린다. 그래서 마치 ‘가짜’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은 매일 매일이 달라진다. 어떤 때는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유체이탈 화법을 쓰다가도, 어떤 때는 권력의 화신처럼 권력추구에 따른 목적적 결과물 (End-Results) 들을 분명히 제시하기도 한다. 일단 그 알량한 대통령의 개인 신념을 얼치기 이념으로 포장해서, 대한민국의 생존이 달린 초미의 ‘국익(國益)’관련 안과 밖의 문제들을 스스로 다 뭉개버리고 있다. 그러니 보기에 따라서는, 특히 주변국 지도자들의 눈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공동의 적(敵)에 대한 동등한 안보동맹관계를 일방적인 ‘종속(從屬)’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국제공법을 무시하며, 국내법 차원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는 것들을 ‘피해자 중심주의’로만 풀려고 한다. 너무나도 현실과 괴리가 크기 때문에 문대통령의 통치행태는 그래서 늘 의심받는다.

      

주변국의 지도자들이 가장 놀라는 현상은, 21세기 국제사회에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한 근대적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그것도 100년 전 열강에 의해서 나라를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는 국가의 수반이, 자신이 앞장서서 스스로 자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적 주권을 포기하고, 안보를 해체시키며, 산업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과는 생명공동체, 중국과는 운명공동체 운운하는 정신세계에, 여전히 양식과 상식을 가진 안과 밖의 모든 사람들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며, 몽상적인 국가파괴행위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대통령으로 통칭되는 현 정권의 무리들은 마치 얼치기 이념이라는 가면을 쓰고, 그 핑계로 도적질과 화적질을 일삼으며 내부적인 파괴와 함께, 자신들의 물질적 이익을 챙기는 것을 당연시 하는 집단으로까지 보여 진다. 이들에게 결단코 대한민국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공통된 인식이 없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이다.

마치 지리산이나 팔공산에 살았던 ‘빨치산’ 무장 세력들이 보급투쟁을 위해 산 밑의 민가를 습격하고, 도륙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빨치산처럼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법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이를 선별적으로 적용해서 대국민 노략질을 일삼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내부에서 법제화를 통한 ‘독재권력’을 공고화시키고, ‘포퓰리즘’을 통해 자신들을 추종하는 새로운 인간형들을 만들어내면, 새로운 형태의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주권국가인 소위 ‘우리나라’를 주변국들인들 어쩔 수 있겠는가! 그런 정도로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기범보다 사기당한 피해자가 더 나쁘다?

이제 양식과 상식을 가진 국민들은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베일속의 ‘진실’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사기와 기만과 거짓말로 속이는 자들보다 이에 속는 자들이 더 나쁜가?’ 라는 얘기들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당연히 사기꾼이 사기를 당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나쁘다. 다만 사기 치는 과정에서, 자기부류의 새로운 인간들을 양산해 내는 과정에서, 알면서도 개인이익을 탐해서 이에 방관하는 지식인들이야말로 가장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피붙이 민족으로서의 생명공동체에 충실하고, 이웃집 대국인 중국과는 운명공동체로, 함께 쳐다보는 미래와 가치가 같으면, 동맹국인 미국과 얄미운 일본도 이런 현실을 다 이해해 줄 것으로 국민들에게 사기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잘못된 상황을 지식인들이 바로 잡으려고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파괴시키는 몽상적, 비현실적, 추상적인 관념들이 그들의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진실이 되고 있으며, 자신들의 우월한 관념적 의지를 도덕적 심성으로 거짓포장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저항이 없다.

그러니 국내적으로 성공했다는 착각 속에 한줌도 안되는 권력에 점차 도취되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주변 강대국들에게 조차도 이런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망나니 외교’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동맹관(同盟觀)

근, 현대사에서 패권 전이과정을 잘 설명하고 있는 오르간스키 (J. F. K. Organski)교수는, 지난 500년 역사 속에서 100년 주기로 여러 형태의 패권 국가들이 등장했다가 다시 사리지는, 소위 패권국가들 간의 상호적인 ‘길항작용(拮抗作用)’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과거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가로 등장했던 국가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해양국가’였다는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현재의 미국은 모두가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했거나, 지배하는 ‘해양국가’들이었다. 물론 패권의 길항세력으로 등장했던 ‘대륙국가’들의 도전도 만만찮았지만, 모든 패권의 결과적 행방은 해양국가로부터 해양국가로 전이되어졌다. 국가 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는, 주기적으로 강대국들 간의 치열한 전쟁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이고, 그 사이에 수많은 약소국들이 새로 등장하거나, 소멸되는 일들이 허다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 동양의 ‘해양국가’였던 일본의 선택은 당시 전 세계 해양의 패권을 장악했던 영국과의 동맹이었다. 청일전쟁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독일, 러시아, 프랑스 ‘3국의 간섭’ (1895)으로 요동반도를 도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고, 절체부심 국제정세를 파악한 일본이 선택했던 외교적 ‘신의 한수’는 대륙국가 러시아의 남진을 항상 막고자했던 영국과의 영일동맹 (1902) 이었다.

러일전쟁 (1904)에서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일본과의 교전을 위해 유럽에서 출항했던 러시아 발틱함대를, 영국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반쯤 ‘골병’들게 만든 후에야 서해로 진입시켰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의 영국과의 동맹은 미국이라는 또 다른 해양대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영국과 미국의 동조아래 그렇게 순탄하게 종결되어 졌다.

역사상 최초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맞았던 일본은, 수많은 원혼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전후에 해양 패권국가인 미국의 등에 다시 올라 탔다. 미일동맹 (1951)을 기축으로, 일본의 경제회복정책을 주도했던 “요시다(吉多)독트린”은 그렇게 전 후 일본의 재건과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불러왔다.

가덕도와 차이나타운, 대한민국호의 침몰 앞당겨

일본의 외교적 선택으로부터 이미 나라를 한번 상실했던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동맹의 선택’이다. 국가의 생존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동맹관계를 통한 억지전략이다. 국가생존이야말로 모든 국가의 최고 가치이자, 최고의 국익이다.

그래서 국제정치에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과거역사의 원한에 뿌리를 둔, 영원한 원수는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 이스라엘, 폴란드와 같이 ‘지정학의 저주’를 받고 있는 ‘전략요충지의 소국’들은 단 한번의 외교적 실수로 국가소멸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소냉전시대 한국의 선택은 분명 옳았다. 동맹국 미국의 군사적 보호아래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이제 동맹국인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 아시아판 나토 (NATO)인 "쿼드 (QUAD)+알파"를 구상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패권전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또 다시 과거 100년 전 구한말과 같은 힘의 대결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가시화되고 있고, 추가적으로 북한 핵문제와 대만문제가 덧붙여져 있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생존을 위해 취해야 하는 외교적 선택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대통령은 갑자기 ‘가덕도’로 날아갔다.


선거를 위해서? 포퓰리즘을 위해서? 물론 그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핵심으로 봐야할 것은 바로 중공 시진핑에 보내는 메시지이다.

미국을 욕보이고, 일본을 ‘주적’으로 만들며, 대한민국을 ‘소멸’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중공의 천하질서에 올라타려는 저의가 느껴진다.

중국의 태평양진출을 위한 제2도련선을, 그야말로 ‘동해’로까지 확대시키는 것이 바로 ‘상해와 가덕도’로 이어지는, 외교안보와 정치경제를 연결시키는 ‘해상안보라인’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한반도 유사시, 미군진출 교두보인 ‘부산’이 ‘차이나타운’이 되는 것을 말이다..

문대통령은 미국을 기만하기 위해, 오늘도 미중 간 한곳에 치우치지 않는 ‘양다리전략’을 편다고 말한다. 이런 전략이야말로 대한민국 외교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외교 전략이라고 사기를 치지만, 이를 지켜보는 시진핑과 김정은은 지금 표정관리가 너무나 힘든 상황일 것이다.

이러다가 진짜 범 내려온다.


<정치학박사 / 한국국가전략포럼 선임연구위원>

  • 글쓴날 : [2021-02-28 20:51:39]

    Copyrights ⓒ 리베르타임즈 & www.libertimes.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