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선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최선(最善)은 둘째치고 차선(次善)으로라도 정권교체를 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비상시국이다. 희망조차 찾을 수 없었던 5년 전의 뒤집힌 운동장을 돌이켜보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문재인 강점기(强占期) 청산에 집중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란 단어가 있다. 북한식 표현이고 프로파간다인데 이런 단어가 여과 없이 방송과 교육현장에서 사용되다보니 일반적인 명사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틀린 말이다. 강점기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곳이 있어 잠시 이를 빌려 쓴다면 바로 사기탄핵·체제탄핵 이후의 '문재인 강점기'다.
당시 대통령 보궐선거라는 개념조차 전무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상초유의 사태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는 의미에서 청산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문재인 세력들이 뿌리깊게 박아놓은 악(惡)의 진영을 일소하는 ‘신성한 노동의 첫걸음’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러하다고 할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처절한 투쟁은 어쩌면 3월 9일 그날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 피 터지는 혈투에서 내 몸은 상처하나 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바보 천치가 어디 있을까...
아주 단순하다. 문재인 강점기가 저문 며칠 지나기도 전에, 사회 전 분야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던 철지난 이념세력은 집권 초 터져 나올 인사와 정책, 한-미-일 삼각동맹 문제 등등을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노리다가, 광우병 난동(亂動)보다 10배, 아니 100배 더한 공세를 펼칠 것이다.
아마도 국보 1호 남대문 방화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며, 대장동 연루자들의 자살 당한 사건은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다름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이것을 어떻게 제압하느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동(亂動)을 공권력에만 맡겨서 해결될 것이라는 망상(妄想)은 그저 관료들의 리그인 ‘국힘당’류의 고매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이 선사한 ‘국민됨’이 거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그건 보수(保守)도 아니요, 우파(右派)도 아니며, 자유(自由)를 논할 자격도 없다. 그것이 당시의 공권력만으로 지켜졌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모지리라고 칭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이다,
북한과 추종세력의 단골메뉴인 ‘평화팔이’를 제압해야 한다.
옛날을 생각해보면 동네깡패는 늘 있었다. 그로부터 동네는 항상 불안했고 두려움에 떨었었다. 누구도 나서서 제압하기는커녕 대충대충 타협했다. 말이 타협이지 그것은 그저 항복이요 굴종이었으며, 노예로의 길이었다. 어쩌다가 힘센 이웃집이 도와줘서 그나마 기싸움이라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양아치질과 동네의 내분(內紛)으로 힘센 이웃도 한계가 있었다. 불안한 평화(?)는 모두의 타협 아닌 굴복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해갔다. 이제는 구석에 숨어 구경만 하는 예전의 꼬마들이 아니었다. 모두가 힘을 내었다. 예전처럼 그리 두렵지도 않았다. 양아치나 깡패나 마찬가지지만 그들도 눈치는 있는 법이다. 이제는 이곳이 마냥 자신의 노예농장이 아님을 알아챘다.
야반도주(夜半逃走)가 현실로 나타났다. 세상의 이치도 똑같다. 동네의 일상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북한이라는 깡패-양아치에게 대한민국 전체를 노예로 마냥 두려는 세력이 바로 문재인류이며, 거짓 ‘평화팔이’로 국민들을 현혹할 생각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현실적 ‘힘(力)’들을 그대로 두고 대한민국을 다시 바르게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름이 살이 될 수 없는 이치와 똑같다.
북한을 향한 자유화 물결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 칭했던 문재인 세력들로 말미암아 북한 김정은은 모든 것을 이뤘다. 먼저 남쪽 정권의 자발적 조공(朝貢)으로 지구상 가장 악랄한 북한정권을 겨냥했던 외부정보 유입이라는 효율적인 무기를 법률로 차단했으며, 북한인권 관련단체의 고사작전으로 거의 무력화 하는데 성공했다.
이것에 힘입어 다 쓰러져가던 북한 김정은 정권은 내부의 적(敵)인 반체제 세력과 청년층의 자유화 확산기조 등에 대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라는 철퇴로 제압했으며, ‘정치범수용소’를 앞세운 폭압·공포통치로 완벽히 억압했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강점기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던 바, 이에 대한 여건 조성 내지 방조 및기여한 행위는 여적죄(與敵罪)로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토대위에 남한 영상물 시청, 남한식 의식주 문화에 빠졌다고 죽임을 당한 수많은 북한청년들의 상식적인(?) 소망이었던 ‘자유화 사조(自由化 思潮)’의 확산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자유화 사조의 확산에 대한 방법론에 있어서는 다양한 전략들이 구사될 수 있다.
우선 종교단체를 통한 인도주의적 접근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며, 외부정보 유입이라는 심리적 접근도 아주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2011년 리비아 사태 당시 무아마르 카다피에 의해 자행된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적용된 R2P(보호책임 responsibility to protect )의 방식과, 유엔안보리가 주도하는 직접적인 국제사법적 접근 방법도 주효한 사례가 될 것이다.
시민사회의 역할을 극대화해야 한다.
시민사회(civil society)는 공유된 이해-목적-가치를 둘러싼 강제되지 않은 집합 행동의 장을 지칭하며, 자유민주주의 구현의 핵심가치다. 북한과 같은 공산전체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맹아(萌芽)가 싹틀 수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위대한 민주주의 대장정을 시작하는 새로운 물결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가장 민주적 형태로 발현된 것이 바로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거나 혹은 시민사회조차 부패했다면, 그 국가 내부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지극히 낮은 수준일 것이며, 권력의 사유화(私有化)를 시작점으로 전체주의 국가로 귀결됨은 자명한 현실이 될 것이다.
문재인 강점기 시기의 대한민국이 바로 그 전형이라고 할 것이며, 이것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면 노예의 길로 들어서게 됨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예로 살 것이냐, 자유인으로 번영할 것이냐.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달렸다.
도 · 희 · 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 한국자유회의 사무총장)
※ 한국자유회의와 리베르타스는 3·9 대선을 맞아 [기획칼럼 시리즈물]을 대선일까지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자유회의는 노재봉 전 국무총리의 제자그룹이 '체제탄핵' 국면에 나라를 구하자는 취지로 결성한 지성인 단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