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톨릭 주교들은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통상적으로 ‘댈러스 헌장’으로 알려진 「아동 및 청소년 보호를 위한 헌장」의 개정안에 대해 표결할 예정이다.
이 헌장은 2002년에 채택되었고, 2018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되었다. 이 문헌은 미성년자 보호와 학대 예방에 대한 교회의 책무에 정당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고발당한 사제들에게 적법 절차가 필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가톨릭 사제들은 이 헌장에 지속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 헌장이 자신들에게 제기되는 어떠한 고발도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에 관한 철학적 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022년 미국 가톨릭대학교가 실시한 「전국 가톨릭 사제 연구」는 성직자의 82%가 허위 고발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밝혀냈다. 주교들은 이 수치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사제들이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의, 적법 절차, 그리고 증거가 달리 말하지 않는 한 무죄로 간주될 권리일 뿐이다.
최근 회칙에서 레오 교황은 보조성의 원리를 유려하게 옹호했는데, 이것은 주교들이 사제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결정은 관련된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공동체 생활을 증진하고 이미 내려진 결정을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없도록 한다.”
주교들이 검토 중인 초안에는 몇 가지 진전이 있지만, 개선의 여지도 남아 있다. 초안은 레오 교황과 학대 피해자들에 대한 그의 중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인용한다. 그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고발당한 성직자들을 위한 정의의 필요성에 관한 레오 교황의 발언은 인용하지 않는다. 그는 9월에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고발들은 서랍 속에 넣어둘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피해자와 피고발자 모두를 향한 자비와 참된 정의의 감각으로 다루어져야 합니다.”
초안에서 환영할 만한 진전 가운데 하나는 “허위 고발을 당한” 성직자들과 “무죄 추정”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는 점이다. 또한 무죄 추정의 문제는 문헌의 전문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기본적 인권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헌장의 이전 판본들과 비교할 때 진전이다.
무죄 추정은 초안 제5항에서도 다시 언급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중대한 문제가 드러난다. 무죄의 확인 직후, 초안은 「교회법전」 제1722조를 인용한다. 그 조항은 주교가 “절차의 어느 단계에서든 피고발자를 거룩한 직무 또는 어떤 직무와 교회 직무에서 배제할 수 있고, 어떤 장소나 지역에 거주하도록 명하거나 금지할 수 있으며, 또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에 공개적으로 참여하는 것까지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물론 이 교회법 조항은 어떤 사람의 유죄가 명백하거나, 미성년자들에게 즉각적인 위험이 존재할 때에는 타당하다. 그러나 많은 주교들은 외부의 시선을 걱정한 나머지, 고발이 아무리 기이하거나 오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사제들을 즉시 직무 정지시키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사제들은 단지 민사소송에 이름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직무 정지된다.
결정적으로 제5항은 이 교회법 조항에 따른 제한들을 “임시 예방 조치”라고 부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른바 “임시 조치”들이 실제로는 여러 해 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미국 주교들은 사제의 “무죄 추정”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 추정은 단지 부수적 언급, 곧 방론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전국 가톨릭 사제 연구」가 사제들의 75% 미국 주교단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인가?
초안의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이 쉽게 수정될 수 있다. “이러한 예방 조치들은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신속한 조사가 종결된 직후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사제들은 포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수십 년 전의 고발만을 근거로 직무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
초안은 두 가지 점에서 더 미흡하다. 첫째, 제5항은 이렇게 말한다. “사제나 부제가 해당 고발에 대해 무혐의 또는 무죄로 밝혀질 경우... 상황이 허락하는 바에 따라, 가능한 직무 복귀와 함께 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질 것이다.” 왜 직무 복귀가 단지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가? 왜 “상황이 허락하는 바에 따라”인가? 왜 “가능한 한 신속히”가 아닌가? 초안의 이러한 유보적 표현은 신중함으로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두려움을 드러낸다.
둘째, 개정 초안의 결론에서 주교들은 몇 가지 “서약”을 제시한다. 곧 아동 보호를 위해 일하겠다는 서약, 이 목표를 위해 자원을 투입하겠다는 서약, 성직자들에게 학대당한 이들의 치유를 위해 일하겠다는 서약이다. 주교들은 여기에 또 하나의 서약을 추가해야 한다. 성적 학대로 고발당한 모든 이들에게 정의와 적법 절차가 보장되도록 사제들과 함께 일하겠다는 서약이다.
나는 주교들이 여기에서 제시한 의견들을 진지하게 숙고하기를 요청한다. 주교들도 분명히 알고 있듯이, 「전국 가톨릭 사제 연구」는 사제들과 주교들 사이에 벌어진 깊은 간극을 드러냈다. 사제들은 미국 주교단에 대해 이례적으로 낮은 신뢰와 확신을 보였다. 이러한 불신의 대부분은 헌장의 가혹한 집행과 관련되어 있었다.
복음의 사명이 앞으로 나아가려면, 주교들은 자신들의 사제들이 갖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학대로 고발당한 이들을 위해 공정한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단순히 결단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성소도 증진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너무나 많은 사제들이 「전국 연구」에 실린 한 수도사제의 다음 말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무관용 원칙이 적용되고,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 유죄로 취급된다면, 도대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누가 사제가 되고 싶어 하겠습니까? ‘아, 그래요, 저도 그 집단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하려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어야 합니다.”
25년 전, 미국 사회는 아동 학대에 대한 도덕적 공황에 사로잡혀 있었다. 가톨릭 주교들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압박 속에서 스스로도 공황에 빠졌고, 신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처방을 받아들였다.
나는 주교들에게 두려움을 떨쳐버리라고 요청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두려움, 언론에 대한 두려움, 시민단체들에 대한 두려움,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는 본질적이며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발당한 사제들에 대한 배려 역시 그래야 한다.
헌장 개정을 앞둔 지금, 주교들에게는 참된 정의를 실현할 기회가 주어져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