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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일본 조선신보가 모란봉제1중학교 초급반 학생 3명이 전국보통교육부문 로봇경기에서 1등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보도는 리위력, 권영림, 유준혁 학생이 학교 로봇소조에 들어간 지 불과 6개월 만에 주어진 부품으로 로봇을 구상·제작·조종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고 전했다. 겉으로 보면 창의교육과 과학기술 인재 양성의 성공 사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보도는 단순한 학교 미담이 아니다. 북한이 최근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과학기술 강국’ 선전의 연장선에 있다. 로봇, 인공지능, 정보기술, 자동화 같은 현대적 용어를 앞세워 체제의 미래지향성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짙다. 문제는 북한의 교육 현실이 실제로 그런 선전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는 점이다.
신보는 세 학생의 개별적 장점을 자세히 부각했다. 논리적 사고력이 뛰어난 학생,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데 흥미가 있는 학생, 바이올린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학생을 선발해 서로의 장점을 배우게 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교육학적으로 그럴듯한 이야기다. 창의력, 협업, 융합적 사고를 강조하는 현대 교육의 언어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북한 교육에서 이런 ‘개성’과 ‘창의성’이 실제로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의 학교 교육은 학생의 자유로운 탐구보다 당의 노선과 국가의 요구에 복무하는 인재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학생 개인의 호기심과 창의성은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칭찬받는다. 결국 로봇을 만드는 손은 창의적일 수 있어도, 그 로봇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세계는 철저히 제한되어 있는 셈이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 매체가 학생들의 성취를 개인의 성장 과정이 아니라 학교와 교원의 지도, 조직적 선발, 소조 활동의 성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이는 북한식 선전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한 개인의 재능도 체제의 교육 방침과 집단주의적 지도 체계의 산물로 귀속된다. 학생들은 주인공처럼 등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 교육정책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소품으로 소비된다.
로봇교육은 본래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는 과정이다. 질문하고, 의심하고, 다른 답을 시도하고, 때로는 정해진 방식에서 벗어나는 경험이 중요하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그런 자유로운 사고다.
체제는 기술적 창의성은 장려하면서도 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은 억압한다. 로봇은 만들 수 있지만, 자유로운 시민은 만들지 못하는 교육 구조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북한은 국제 제재와 만성적 경제난 속에서 일반 학교의 교육 기자재와 정보 접근성이 극히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우수 학교나 선발된 학생들의 성과를 전체 교육 현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선전국가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평양의 특정 학교, 특정 소조, 특정 우수 사례가 북한 전체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번 보도에서 가장 역설적인 지점은 ‘서로의 우점에서 배운다’는 제목이다. 학생들이 서로의 장점을 배우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북한 사회 전체로 시선을 넓히면, 정작 북한 체제는 외부 세계의 장점에서 배우기를 거부해 왔다.
자유로운 정보 접근, 열린 학문 교류, 개인의 선택권, 교육의 다양성, 실패할 자유와 비판할 자유야말로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다. 북한은 바로 그 토대를 차단한 채 결과물만 선전하고 있다.
세 학생의 재능과 노력 자체는 존중받아야 한다. 어린 학생들이 로봇을 만들고 대회에서 성과를 낸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성취가 체제 선전의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교육의 본질은 흐려진다. 아이들의 재능은 국가의 과시물이 아니라 자유로운 미래를 여는 씨앗이어야 한다.
북한이 진정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고 싶다면 로봇소조의 성과를 선전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정답을 암기하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하는 교육, 충성을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교육, 체제에 필요한 인재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로봇을 잘 만드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은 북한 교육의 우월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재능 있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배우고, 검색하고, 토론하고, 세계와 교류할 수 없는 현실이야말로 북한 교육의 가장 큰 비극이다.
조선신보가 보여준 것은 ‘미래 교육’의 성공담이 아니라, 미래를 말하면서도 자유를 두려워하는 체제의 모순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