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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돋보기] 양떼보다 먼저 보이는 ‘수령의 은정’

2026-09-28 10:59 | 입력 :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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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산 성과마저 우상화 선전에 동원한 북한

인터넷 캡쳐
인터넷 캡쳐

북한 매체가 평안북도 창성군의 양 사육 성과를 대대적으로 소개하며 이를 김정은의 이른바 ‘은정’과 ‘현명한 영도’의 결과로 선전하고 나섰다.

주민들의 먹거리와 축산 생산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경제활동조차 최고지도자 개인의 시혜로 포장하는 북한식 선전의 전형이 다시 반복된 것이다.

보도는 창성군 무원덕지에 우량품종인 ‘창성양’ 수천 마리가 방목되고 있으며, 1,400여 정보의 풀판을 조성하고 수십 리의 도로를 건설했다고 소개했다. 사료가공장과 숙소, 양우리 등을 갖추고 과학적인 사양관리와 수의방역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축산 기반을 확충하고 품종을 개량하며 방목지를 조성하는 일 자체는 주민들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경제활동이다. 그러나 북한 매체의 관심은 생산성과 비용, 공급량, 주민들이 실제로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육류를 소비할 수 있는지에 있지 않았다.

기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오직 ‘김정은의 은정’이었다.

양을 들여온 것도 김정은의 사랑이고, 양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도 김정은의 영도이며, 사육 노동자들이 밤을 새우며 양을 돌보는 이유조차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축산업 종사자들의 노동과 전문성, 지역 주민들의 부담은 사라지고 모든 성과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귀결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주민들의 식생활 개선을 말하면서도 정작 주민 생활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성양이 수천 마리로 늘어났다고 하지만 연간 고기 생산량이 얼마인지, 주민 1인당 공급량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가격은 일반 주민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한 수치는 없다. ‘신의주불고기전문식당에서 손님들이 창성양고기만 찾는다’는 주장 역시 실제 판매량이나 가격, 공급 실태에 대한 검증 가능한 자료 없이 선전성 증언으로만 제시된다.

북한 경제 선전에서 반복되는 문제다.

공장이 들어서고, 농장이 만들어지고, 가축이 늘어났다는 장면은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그 성과가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실제로 얼마나 개선했는지는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다. 생산 과정은 보여주면서 소비자의 삶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번 보도에는 노동을 바라보는 북한 당국의 시각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산속 방목지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노동자 부부가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분발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자의 수고가 적절한 임금과 휴식, 생활 여건으로 보상되고 있는지보다 지도자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 먼저 등장한다. 개인의 노동은 권리와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충성의 증거로 바뀐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주민에게 충분한 육류를 공급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경제·민생 정책이라면, 왜 그것이 최고지도자의 특별한 ‘은정’이어야 하는가.

정상적인 국가에서 농업과 축산 진흥은 행정과 산업정책의 영역이다. 품종 개량은 전문가의 몫이고, 사료 생산과 수의방역은 체계적인 축산 시스템이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 선전에서는 양 한 마리의 성장 과정까지 최고지도자의 ‘세심한 가르침’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개인 우상화는 오히려 북한 경제 시스템의 취약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최고지도자가 양의 먹이 단위와 사양관리 방법까지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 경제활동 하나하나를 지도자의 ‘배려’로 설명해야만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제도보다 개인숭배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 매체는 “창성양은 산마다 골마다 더욱 욱실거리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산을 뒤덮은 선전용 양떼가 아니다. 실제 식탁에 오르는 고기이며,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고, 지속 가능한 생산과 유통 시스템이다.

양떼가 아무리 산을 가득 메워도 주민의 식탁이 풍성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생의 성과라 부르기 어렵다.

북한이 정말 주민생활 향상을 말하고 싶다면 ‘수령의 은정’을 찬양하는 문장부터 줄일 일이 아니다. 생산량과 공급량, 가격과 주민 소비 수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먼저다.

양떼가 흐르는 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의 식탁이다. 민생마저 우상화의 재료로 삼는 순간, 축산 성과는 경제정책이 아니라 또 하나의 선전물이 되고 만다.

김·성·일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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