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명: 뉴스홈 > 오피니언 > 종교 기사 제목:

[USA 가톨릭 414] 라틴 미사의 ‘양육권’은 누가 갖는가? - ②

2026-07-29 07:30 | 입력 : 리베르타임즈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X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링크 복사

스티븐 데이즐리 Stephen Daisley is a columnist for the Scottish Daily Mail. 칼럼니스트


그렇다면 이 완고한 몽매주의자들, 향 연기와 죽은 언어의 속삭임 뒤에 복음을 감추려는 전례적 원시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고백하건대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물론 나는 오직 나 자신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지만, 라틴 미사 참석자들을 둘러싼 담론은 실제로 그들 가운데 있어 본 경험과 좀처럼 일치하지 않는다.

우선 우리 모두가 르페브르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레고리 헤세 신부를 사랑한다”는 범퍼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지도 않으며, 바티칸이 파티마의 진짜 ‘세 번째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전통주의자조차 아니며, 많은 이들은 개종자가 아니다. 또한 상당수는 통상 형식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상 형식에 더하여 특별 형식 미사에도 참석한다.

나는 이런 고정관념을 품은 사람들을 탓하기 어렵다. 한때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다. 무지에서 비롯된 무적의 자신감으로, 나는 라틴 미사에 관심을 갖는 가톨릭 신자들이란 교황좌 공석주의자들, 프란치스코 교황 혐오자들, 그리고 멜 깁슨뿐이라고 믿었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인 2025년 2월, 생애 처음으로 라틴 미사에 참석했다. 그전에 내가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여했던 마지막 시기는 십 대 때였다. 대죄를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말로 고해성사를 시작해 보지 않았다면 인생을 제대로 살아봤다고 할 수 없다.

“신부님, 죄를 지었으니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금세기에 들어 처음 보는 고해성사입니다.”

왜 하필 라틴 미사가 나를 다시 교회로 이끌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모태신앙 가톨릭 신자로서 자국어 미사에만 참석해 왔다. 복사로 봉사했을 때도 노부스 오르도 미사였다. 사실 나는 ‘노부스 오르도’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미사는 그저 미사였고, 영어로 봉헌되었다. 사제는 신자들을 바라보았으며, 오르간 연주자는 우리가 모두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동안 〈빛나소서, 예수님〉을 연주했다.

부모님이 성인이 될 무렵에는 라틴 미사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내가 라틴 미사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1980년대의 통속적인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가시나무새》의 몇 장면이 전부였다. 그 작품에서 리처드 체임벌린은 진홍색 수단에 욕심을 품은 사제를 연기한다.

그 드라마는 전통을 홍보하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작품이 아니다. 체임벌린이 연기한 사제는 농부의 딸을 임신시켰을 뿐 아니라, 혀로 성체를 영해 줄 때 “아멘”이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본당 미사에 몇 차례 다시 참석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고 말하자, 한 친구가 한 달에 한 번 라틴 미사를 봉헌하는 인근 본당을 추천했다.

나는 기도문과 응답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또한 사제와 함께”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하지만 십 대 시절 분노에 찬 무신론자였을 때 그러기 시작했던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그 기도문과 응답에 계속 저항하고 있었다.

나는 곧 내가 미사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하느님과 싸우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존재한다고 믿지도 않는 하느님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분과 끝장을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추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영어 미사에서도 소외감을 느끼는데, 라틴어 미사라면 내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결국 나는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나의 첫 라틴 미사는 완전한 실패였다. 본당에서 친절하게 제공한 인쇄본 『미사 통상문』을 들여다보았지만 도저히 예식을 따라갈 수 없었다. 무릎을 꿇어야 할 때 앉았고, 서 있어야 할 때 무릎을 꿇었다. 사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음향 장비 고장 때문인지도 의아했다.

게다가 미사 맨 마지막에 복음을 한 번 더 읽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복음을 하나 더 집어넣은 것이다. 나는 묵주를 집어넣고 휴대전화를 다시 켤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긴장되었다. 새 미사가 도입되기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매주, 심지어 매일 이 미사를 견뎌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바오로 6세를 성인으로 시성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매달 다시 그 미사를 찾았다. 마침내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미사에 관한 글을 더 많이 읽기 시작했고, 1962년판 미사 경본도 구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도 전례 중에 어디를 따라가야 하는지 놓치곤 한다. 라틴 미사에 40년 동안 참석한 뒤에도 같은 경험을 한다는 가톨릭 신자들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이 미사가 지닌 신비와 장엄함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옛 미사 양식은 바로 그 점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말했듯이, 라틴 전례는 “수많은 민족을 신앙의 덕 안에서 굳세게 하고 그들의 신심을 풍요롭게 하였다.”

사제는 우리를 향하는 대신 하느님을 향한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말을 조용히 읊조린다. 미사는 우리를 위한 공연이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하는 희생 제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영혼 안에 일어나는 겸손은 엄청난 것이며, 우리의 교만을 산산이 부순다.

어떤 가톨릭 신자들은 라틴어 성가와 끊임없이 흔들리는 향로가 있는 장엄 미사와 대미사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들은 영적인 감각을 물질적으로 환기한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빼앗긴 것은 1962년판 저미사다. 향도 없고, 종소리는 조금 있으며, 오직 전례만이 있을 뿐이다.

라틴어와 ‘주님을 향한’ 전례 방향, 곧 사제가 회중과 같은 방향으로 제대를 향하는 방식을 제외하면 옛 미사와 새 미사의 차이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차이들은 심오한 영적 의미를 지닌다.

사제와 복사가 전례적 상승을 시작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세우듯 바치는 입당 전 기도가 있다. 사제가 “이는 내 몸이니라”라는 뜻의 “호크 에스트 에님 코르푸스 메움”(hoc est enim corpus meum)을 말한 뒤, 성체를 들어 올리기 전에 하는 무릎 절도 있다.

사제의 영성체 기도에서는 구원이 지닌 영적 본성이 더욱 강조된다. 통상 형식에서 사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소서.”

그러나 특별 형식에서 사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제 영혼을 지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이러한 차이와 그 밖의 여러 차이 때문에 어떤 이들은 로마 전례의 두 형식을 서로 별개의 미사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가르침을 통해 “『로마 미사 경본』의 두 판본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례의 역사에는 성장과 진보가 있지만 단절은 없기” 때문이다.

단절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우리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미사 안에 의도적으로 단절을 만들어 넣는 때다. 그것은 참으로 추문이 될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 거행되든 미사는 우리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사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에 관한 것이다.

그분의 미사라는 보화와 그분 교회의 일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보여준 관대함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실천한 신중함을 함께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본당 사제들에게 통상 형식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특별 형식을 거행하도록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이미 정착된 통상 형식 미사에 추가하는 경우에만 특별 형식 미사를 도입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둘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특별 형식, 곧 베투스 오르도(Vetus Ordo)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기존의 매일 노부스 오르도 미사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사제는 날마다 두 대의 미사를 봉헌해야 한다.

이 조건을 지키는 일은 사제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부담이 그의 신념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입증할 수 있다. 곧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옛 전례에 따른 성찬례 거행을 영적으로 갈망하고 있으므로, 그 갈망을 채워주기 위해 특별 형식을 봉헌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확신 말이다.

옛 전례가 본당 안에 분열을 뿌리거나 더 넓은 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사제들에게 두 미사 형식이 모두 유효하며 둘 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실이라는 점을 신자들에게 교리교육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통상 형식은 살아 있는 미사의 표현으로, 특별 형식은 지속되는 미사의 표현으로 거행될 수 있다. 이러한 타협이 성공하려면 전통주의자들과 그 밖의 라틴 미사 참석자들도 옛 전례에 요구하는 것과 똑같은 경의를 노부스 오르도에 보여야 한다.

나의 신앙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거친 길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라틴 미사가 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이 길 위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라틴 미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지금도 대부분 설명할 수 없는 안내자였다.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는 것”이 나를 교회로 돌아오게 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끝>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Copyrights ⓒ 리베르타임즈 & www.libertimes.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더보기 리베르타임즈
댓글 :0
댓글 등록
0/400
  • 작성자명 |2024.11.14 10:30
    이곳은 댓글 작성한 내용이 나오는 자리 입니다.
1 2 3 4 5
리베르타임즈로고

신문사소개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도희윤) | 기사제보 | 문의하기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 5길 12 타운빌 2층 | 이메일: libertimes.kr@gmail.com | 전화번호 : 02-735-1210
등록번호 : 415-82-89144 | 등록일자 : 2020년 10월 7일 | 발행/편집인 : 도희윤
기사제보 및 시민기자 지원: libertimes.kr@gmail.com
[구독 / 후원계좌 : 기업은행 035 - 110706 - 04 - 014 리베르타스협동조합]
Copyright @리베르타임즈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