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소브로'는 동방 정교회로 개종했거나 관심을 갖는 특정 남성, 특히 젊은 남성을 가리키는 속어
9월 말 어느 아침, 나는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작은 그리스 정교회 성당 입구 밖의 등록 데스크로 다가갔다. 나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세계 총대주교를 만나기 위해 입장 허가를 받으려고 휴대전화에 있는 QR 코드를 제시했다. 그 후 나는 대기 구역으로 안내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본당 평의회 구성원이 우리에게 환영 데스크에서 안내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었으며 우리가 아래층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5분 후 그 평의회 구성원 역시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 나는 거의 놀라지 않았다. “나는 조직된 종교에 속하지 않는다—나는 정교회 신자다”라는 농담이 있지 않은가. 질서와 규율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아니라 로마의 특기이며, 그리스의 특기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참석자들 가운데 일부가 총대주교의 강론이 진행되는 동안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끝없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심지어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등 경건함이 부족한 모습을 보고 더욱 실망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정교회 문화 속에는 깊이 스며든 경건성이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가장 경건한 사람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중 속에서 개종자들을 구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의 명백한 그리스인이 아닌 외모뿐 아니라, 과장된 경건 행위 - 극적으로 성호를 긋고, 성화 앞에서 반복적으로 절하며, 기도 매듭을 손에 들고 있고, 머리에 스카프를 쓰는 모습 - 은 그들이 개종자라는 분명한 신호였다.
나는 동방 정교회를 떠난 사람으로서 최근 개종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흥미롭고도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나 역시 그들 중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교회 안에서 문화적 요소가 지나치게 우세한 현실에 고민을 느꼈으며, 그것은 내가 로마 가톨릭 교회로 옮긴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너무 많은 태생적 정교회 신자들은 신앙을 단지 문화적 현상으로 축소해 버린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집에 성화를 장식하고 부활절에 양고기를 먹는 일과 동일시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은 축소하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문제도 우려한다. 많은 “오르소브로”들이 그 진자를 지나치게 반대 방향으로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문화적 요소를 정교회의 본질에 덧붙은 부수적 요소, 혹은 심지어 본질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기며 무시해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버리는 대신, 최근의 개종자들은 정교회 신앙과 문화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배워 이해해야 한다.
나는 아기였을 때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에서 모두 세례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두 교회의 교회법적 기준으로 보면 불법적인 일이었다(명목상 종교인이었던 나의 부모는 그런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가톨릭 미사보다 정교회의 성찬 예배(신적 전례, Divine Liturgy)에 훨씬 더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어머니 쪽 그리스 가족들이 아버지 쪽 이탈리아 가족들보다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다니던 그리스 교회의 생동감 있는 분위기가, 아버지의 가톨릭 본당보다 훨씬 매력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본당에서는 이름 없는 교외의 “백인” 신자들이 지루한 1970년대 성가를 부르고, 사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서로를 친절하게 대하라고 말씀하신다는 설교를 하곤 했다. 내가 가톨릭에서 좋아했던 유일한 것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 다녔던 본당으로 나를 데려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성 제라르도 축일을 함께 지냈던 때였다. 그것은 매우 이탈리아적인 열정으로 가득한 축제였다.
그러나 나는 정교회 본당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사랑하면서도, 단지 문화 이상의 것을 원했다. 나는 하느님 자신을 알고 그분을 따르고 싶었다. 내가 사제에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을 때마다 그는 그저 계속 기도하고 성찬 예배에 참석하라고만 말했다. 내가 질문을 더 많이 할수록 그는 점점 더 짜증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내가 다니던 대학의 정교회 연구 교수도 나의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는 정교회가 원래의 교회라고 말하며, 무엇보다 내가 그리스인이기 때문에 “그리스인이라는 사실에서 개종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나의 신앙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들뿐이었다. 바로 그 만남들을 통해 나는 로마와의 완전한 친교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누구의 관점이냐에 따라, 그것은 새로 들어간 것일 수도 있고 다시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이 사실을 그리스인 할아버지에게 말했을 때, 그는 내가 “우리 문화에 등을 돌렸다”고 꾸짖었다.
어린 시절부터 정교회의 성찬 예배의 풍요로움을 경험해 온 나에게는 일반적인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 참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트리엔트 미사의 라틴 전례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거행하는 본당들에 깃든 이념적 분위기에는 거부감을 느꼈다. 내가 기쁨에 찬 선교적 제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둔 한 교회 평신도 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비로소 나의 신앙은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례적으로는 여전히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정교회의 민족적 요소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동화된 본당과 논쟁적인 전통주의 본당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오히려 그것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그 향수는 결국 전례와 문화적 전통이 결합된 민족적 가톨릭 본당들을 찾게 만들었다.
물론 문화적 전통은 역사적으로 가톨릭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특히 신앙의 “순수성”과 단순한 “인간적 발명” 사이에 이분법을 설정하는 경향이 있는 많은 개신교 분파들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민족적 요소를 정교회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분리할 수 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정교회의 교회 구조가 분명히 민족적 연대에 기반하여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에는 같은 지역 안에 여러 “민족 본당”이 존재했던 역사가 있지만, 그 본당들은 모두 하나의 교구 관할 아래 있었다. 그러나 정교회에서는 동일한 지역에 여러 교구가 동시에 관할권을 가질 수 있다. 그리스인을 위한 주교, 러시아인을 위한 주교, 안티오키아 전통을 위한 주교가 각각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유대는 단지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차원에도 해당한다. 그리스도교 동방 전통에서 하느님께서 육신을 취하셨다는 사실은 인간의 논리를 초월하여 인간의 경험 속으로 스며드는 신비로 이해된다. 그리스도교 서방 전통의 법률적이고 이성적인 신학적 토대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깊이 신비적인 정교회 신앙 안에서는 “종교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더 어렵다. 이것은 정교회의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태생적 정교회 신자들은 신앙을 문화적 표현으로 축소해 버리며, 그것이 마음과 정신, 행동에 요구하는 바를 외면한다. 나는 겉으로는 매우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그리스인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극단으로 치우친 개종자들은 태생적 정교회 신자들 - 심지어 가장 경건하지 않아 보이는 이들까지도 - 가지고 있는 영적 통찰을 순진하게 무시한다. 평생 동안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전통을 따라 살아온 삶은, 마치 삼투 현상처럼 한 그리스 아이에게 신앙을 전달한다.
부활절에 붉은 달걀을 깨뜨리는 풍습, 성금요일에 쿠부클리온(그리스도 무덤 상징 구조물) 아래를 지나가는 관습(설령 한 시간 늦게 도착하더라도), 집에 성화 코너를 만드는 전통은 그 자체로 복음을 성숙하고 완전히 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그런 행위들 속에서도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심지어 사람들이 루쿠마데스(그리스식 도넛)를 먹고 춤을 추며 교회 소식을 나누기 위해 방문하는 그리스 축제에서도 하느님은 현존하신다.
또한 태생적 정교회 신자들은 신앙이 인간의 도덕적 노력이나 지적 추구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신앙은 여러 정체성 가운데 하나로 선택할 수 있는 반문화적 정체성도 아니다. 오히려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특정한 신앙 공동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보다 하느님의 주도권이다.
물론 이것이 개종자들이 결코 정교회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안드루 스티븐 다믹 신부는 정교회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특정 문화적 정체성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 중서부 출신의 앵글로계 사람이 감리교나 무교파 복음주의에서 정교회로 개종한다면, 어린 시절부터 정교회의 영적 공기를 호흡하며 자란 사람보다 그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훨씬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나의 교리 교육이 부족했던 명목상의 정교회 가족들조차도, 초기 교회 역사에 관한 수많은 영상들을 보고 『필로칼리아』나 파이시오스 장로의 글을 줄줄 외우는 개종자들보다 신앙에 대해 어떤 면에서는 더 깊이 이해하고 있다. 모든 개종자를 단순한 역할 Larper(라퍼, 가상의 캐릭터에 몰입하여 행동하는 사람)로 치부하는 것은 불공정하겠지만, 정교회의 문화적 차원을 통째로 버리는 이들은 정교회를 결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개종자들은 동화와 문화적 뿌리 상실이 세속주의로 이어질 수 있는 미끄러운 경사라는 사실을 과소평가한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종교성”은 진공 상태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삶의 위에서 덧붙이는 장식처럼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깊은 신앙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 신앙이 삶의 모든 영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단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선택”에 머문다면 결국 또 하나의 자기중심적 정체성 범주로 위축될 것이다. 그것은 사회정의 전사나 “성전환 정체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정체성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개종자들은 물론 민족 본당의 문화적 폐쇄성과 경건 부족을 피하기 위해 미국 정교회(OCA) 본당에 참석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정교회 안에 존재하는 신앙과 문화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민족 본당을 피하는 개종자들은 정교회의 문화적 차원이 지닌 가치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태생적 정교회 신자들이 열정적인 젊은 개종자들을 만나면서 어린 시절 문화적 배경을 통해 전해졌던 신앙의 불씨를 다시 불러일으킬 기회를 빼앗게 될 것이다.
태생적 신자들과 개종자들이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정교회 신앙의 본질적 특징인 신앙과 문화 사이의 복잡한 긴장은 오히려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