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두 세기를 형성해 온 하나의 역설과 마주하고 있다. 한때 그리스도교적 서구 세계에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곧 역사가 신적 의미를 지닌다는 바로 그 관념이, 이를 계승한 동일한 근대성에 의해 점차 해체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세속화는 단지 종교적 신앙을 약화시킨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 자체가 이해 가능한 방향성을 지닌다는 확신마저 허물어뜨렸다. 역사의 감각을 상실한 세계 안에서 여전히 ‘섭리’를 말할 수 있는가?
레오 13세는 고전적 그리스도교 해답의 마지막 위대한 옹호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회칙 '불멸의 신'에서 그는 하느님께서 인간 제도를 우회하여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통하여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는 정치 권위가 단지 변덕스러운 민의(民意)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이며 보증자이신 하느님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하였다.
영원한 구원에 질서 지워진 교회는 또한 문명화의 힘이기도 하다. 교회가 뿌리내리는 곳마다 교회는 “사물의 얼굴을 바꾸며” 민족들의 덕을 형성한다. 이러한 틀 안에서 역사는 은총과 자유가 협력하는 장이며, 신적 섭리가 인간사의 전개를 공동선으로 이끄는 무대이다.
레오 13세의 전망은 확신에 차 있었고, 깊이 아우구스티노적이며, 낙관적이었다. 모든 긴장에도 불구하고 근대성 역시 신앙과 이성, 교회와 국가 사이의 회복된 조화 안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는 이러한 낙관을 산산이 부수었다. 칼 로비트는『역사속의 의미』에서, 근대성이 그리스도교 역사관의 형식은 보존하면서도 그 신학적 실체는 제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지적하듯, 근대의 진보 관념은 그리스도교 종말론의 세속화된 유산이다. 곧 하느님 없이도 최종적 완성을 향해 직선적으로 발전한다는 믿음이다.
초월적 토대를 배제한 채 역사의 의미를 유지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로비트에 따르면 급진적 비일관성에 이른다. 종말론적 구조를 지니되 신적 종말을 상실한 역사는 이해 불가능해진다.
레오 13세가 은총과 자유의 협력으로 이해했던 것은 근대에 이르러 이성과 기술의 자족적 행진으로 변모한다. 섭리는 부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율성을 자처하는 역사 과정 속에 흡수되어 공허해진다. 그러므로 20세기의 위기는 단지 정치적 위기가 아니라 신학적 위기, 곧 역사가 구원사로서 붕괴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비트의 분석이, 아무리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교적 응답을 모두 소진하는 것은 아니다. 테오도리코 모레티-코스탄치는 1960년대에 집필하면서, 세속화는 실재의 형이상학적 구조를 제거할 수 없기에 섭리 또한 제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역사속의 의미』에서 그는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지속적인 창조 행위에 의해 지탱되는 한, 역사는 여전히 의미를 지닌다고 제안하였다. 이 관점에서 섭리는 특정 시점의 개입도, 제도적 질서도 아니라,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조건이다.
가장 어두운 사건들조차 그것들이 이해 가능하기 위해서는 초월적 지평을 전제한다. 로비트가 의미의 해체를 본 곳에서 모레티-코스탄치는 형이상학적 뿌리로 내려감으로써 의미를 회복할 가능성을 보았다. 그의 접근은 레오 13세의 통찰을 되찾되, 보다 내면적이며 덜 제도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역사는 언제나 이미 “하느님 안에” 있기 때문에, 신적 행위는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우구스토 델 노체는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였다. 그에게 근대성의 규정적 특징은 신앙의 상실이라기보다 초월성 자체의 위기이다. 『무신론의 문제』(카를로 란첼로티에 의해 『The Problem of Atheism』로 영역됨)에서 그는 세속화에 대한 로비트의 분석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역설적 긍정으로 전환한다. 근대 무신론은 그 부정을 통하여 오히려 인간 인격이 신적 실재에 근본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의 진보 사상에서 마르크스주의적 실천을 거쳐 기술적 내재주의에 이르는 근대사의 긴 궤적은, 델 노체에 따르면, 전적으로 하느님 없이 세계를 구성하려는 단일한 시도이다. 그러나 이 기획은 “내재성의 자기 해체”로 귀결되며, 자율성의 한계가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공허에 이른다. 위기 자체가 섭리에 대한 부정적 계시가 된다. 인간의 자족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바로 그 순간, 역사는 의미를 되찾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델 노체는 세속화의 조건 아래에서 은총과 자유의 레오적 협력을 재해석한다. 신적 행위는 계속되지만, 이제는 인간 유한성에 대한 정화적 인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베네딕토 16세에 이른다. 그는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질문 자체에 대한 신학적 변형을 제시하였다. 회칙 '구원의 희망'에서 그는 섭리를 사회의 가시적 구조에 귀속시키지도, 형이상학적 존재론에만 기초시키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섭리를 신학적 덕인 희망 안에 위치시켰다.
근대성의 “지상적 희망들” — 진보, 과학, 이데올로기 — 은 구원을 약속했으나 이를 실현하지 못하였다. 그 붕괴는 낙관도 예측도 아닌, 그리스도 안에 인격이 실존적으로 닻을 내리는 희망의 그리스도교적 형식을 재발견할 가능성을 연다. 희망은 하느님께서 조용하지만 결정적으로 역사 안에서 계속 활동하시는 방식이 된다.
베네딕토 16세에게 역사 의미는 위로부터 강요되거나 제도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적 약속과 인간 자유의 만남에서 솟아난다. 희망이 역사를 단순한 연대기적 흐름으로 붕괴되지 않게 붙들어 두기 때문에, 역사는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빛 안에서 희망은 세속 시대에 있어서 섭리의 새로운 언어가 된다. 그것은 교회와 국가의 가시적 조화가 아니라, 신자들이 시간 안에서 의미의 가능성을 지탱하도록 하는 내적 지평이다.
이처럼 레오 13세에서 베네딕토 16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리스도교 역사 이해의 쇠퇴가 아니라 변형을 목도한다. 고전적 섭리 질서는 붕괴하고, 근대성은 초월 없이 의미를 정초할 수 없음을 폭로하며, 형이상학은 세속적 진보가 해체한 것을 복원하려 시도하고, 마침내 그리스도교적 희망이 질문 전체를 새롭게 틀 지운다.
만일 역사가 여전히 신적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단지 제도나 형이상학적 구조를 통하여서만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에 열어 두는 희망을 통하여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적 역사 이해는 세속화에 저항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통과하여 변모된 모습으로 새롭게 드러남으로써 지속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