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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고등교육계에 외국 세력의 개입과 학계 스파이 활동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퀸즐랜드에 위치한 해양과학·분자생물학 연구로 유명한 제임스 쿡 대학교는 중국 정부가 ‘유학생’을 사칭한 인물을 캠퍼스에 침투시켜 연구자와 동급생을 감시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우려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호주 일간지 《오스트레일리안》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며, 대학 당국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국 최초의 사이버 보안 인식 프로그램을 출범시키며 대응에 나섰다.
대학 내 학생 사이버 보안 의식 프로그램 신설 조정관인 비앙카 벨더는 중국 정부가 정보 수집과 인적 포섭을 목적으로 ‘가짜 학생’을 파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겉으로는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처럼 보이지만, 실제 목적은 특정 연구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을 물색하는 것”이라며, 특히 첨단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에서 이러한 시도가 두드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벨더는 “학문적 교류를 가장해 접근하면서 누가 취약한지, 누가 설득되기 쉬운지를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상당한 비율의 중국 유학생이 재학 중인 만큼, 일부 가짜 학생이 이들 커뮤니티 내부에서 정보를 전달하거나 여론을 관리하려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호주 보안정보기구(ASIO)는 각 대학에 해외 연구자 및 외국 기관과 협력할 때 신중할 것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ASIO는 지침 문서를 통해 “외국 세력과 그 대리인은 오랫동안 학생과 학자를 목표로 삼아왔다”며 “고등교육 기관의 개방성과 협력 문화는 정보 접근과 인적 접촉을 용이하게 하는 구조적 취약성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지식 교류와 국제 협력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동시에 외국 정보기관이나 영향력 공작의 표적이 되기 쉬운 환경이기도 하다.
특히 해양과학, 생명공학, 사이버 보안, 국방 관련 기술 등 전략적 가치가 높은 연구 분야는 더욱 민감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대학 측은 정기적으로 호주 연방 경찰(AFP)과 ASIO의 브리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학생을 범죄에 연루시키는 시도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벨더에 따르면 중국계 범죄 조직은 학생들을 ‘돈세탁 노새(Money mule)’로 활용하고 있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인 유학생들이 은행 계좌, 신분증, 대학 포털 계정 등을 판매하거나 대여하는 사례가 적발되고 있으며, 이는 불법 자금 이동이나 사이버 범죄에 악용된다.
또 다른 수법은 대학 로그인 정보를 매입해 내부 시스템에 침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사를 위해 포털 로그인 정보를 제공하면 소액의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식의 제안이 학생들에게 전달된 사례도 보고됐다. 이처럼 사소해 보이는 접근이 대규모 정보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사이버 범죄는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일부 국제학생의 부모는 “자녀를 납치했다”는 협박 전화를 직접 받기도 했다. 실제 납치가 아니라 학생을 협박해 ‘납치된 것처럼’ 연출하게 한 뒤 부모에게 몸값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이러한 사기는 특히 중국과 인도 출신 학생 커뮤니티에서 빈번하게 보고되고 있다. 이미 해당 국가들에서 유사 범죄가 만연해 있어 범죄 조직이 문화적·심리적 취약성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캠퍼스 범죄를 넘어, 글로벌 지정학 경쟁이 대학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 협력과 국제 교류는 대학의 생명선이지만, 동시에 전략적 기술과 인재가 집중된 공간이기도 하다.
제임스 쿡 대학교의 교장 사이먼 빅스는 “이번 사이버 보안 인식 계획은 학생들이 사기와 범죄를 식별하고 개인 정보를 보호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며 “학문 공동체가 범죄 활동이나 외국 세력의 공작에 휘말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대학이 ▲연구 보안 체계 강화 ▲학생 대상 보안 교육 확대 ▲해외 협력 프로젝트의 위험 평가 체계 정교화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호주뿐 아니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 영어권 국가들도 최근 몇 년간 외국 정부의 학계 침투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해 왔다. 글로벌 경쟁이 기술·정보·인재 확보 경쟁으로 전환되면서, 대학 캠퍼스는 더 이상 순수한 학문의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벨더는 “호주뿐 아니라 전 세계 대학생이 사이버 범죄자들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며 “보안 인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개방성과 자유를 토대로 성장해 온 대학이, 어떻게 그 가치를 지키면서도 보안 위협에 대응할 것인가. 이는 이제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학문의 자유가 교차하는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