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대한 교황 재임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단정히 빗어 넘긴 은회색 머리에 키가 크고 잘생긴 한 평신도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는 검은 정장에 흰 셔츠, 검은 넥타이를 착용하고 교황청 관저의 성직자 구성원들을 따라 수많은 중요한 행사에서 성 베드로 광장으로 들어서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교황의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 들기도 했다. 1981년 5월 13일의 암살 시도 장면을 담은 사진들 가운데서도, 교황 전용 차량 위에서 쓰러진 교황을 부축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의 이름은 안젤로 구겔이었으며, 그는 1월 15일, 아흔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바티칸 뉴스는 그의 선종 소식을 전하며 다소 바로크풍의 공식 직함을 소개했다. “성하의 궁정 제1보좌관”이라는 직함이었다. 기사 제목은 그를 교황의 “개인 시종”이라 불렀다. P. G. 우드하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젤로는 교황의 “신사의 신사”였을 것이다. 평이한 영어로 말하자면,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전속 시종(valet)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무엇보다도 한 명의 뛰어난 요리사로 기억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결코 미식가는 아니었다. 그는 단 것을 몹시 좋아했고 디저트를 사랑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음식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는 이탈리아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교황이 크라쿠프에서 로마로 데려온 예수 성심 수녀회의 수녀들은 교황 관저와 그 거주자들을 정성스럽게 돌보았다. (그들은 또한 침묵과 신중함의 화신이었다. 1996년 어느 날 밤, 교황께서 나를 배웅하며 다음 날 아침 미사를 준비하던 수녀를 가리켜 “그녀와 이야기해 보시오, 아는 게 많소!”라고 장난스럽게 말해 그 수녀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하실 때 그의 머리를 다정히 받쳐 들고 있던 이도 바로 S.S.C.J. 소속 토비아나 소보트카 수녀였다.) 다만 그들의 음식은 다소 담백한 편이었다.
그래서 수녀들의 휴무일에 교황 식탁에 점심 초대를 받는 일은 더욱 큰 기쁨이었다. 그날이면 안젤로 구겔이 시종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 직접 요리를 맡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탈리아 남성들처럼, 안젤로는 주방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
나는 특히 그가 만든 포르치니 버섯 페투치네를 잊을 수 없다. 그 풍미가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교황 비서였던 스타니슬라프 지비슈 몬시뇰(훗날 추기경)이 내게 엄청난 양의 두 번째 접시를 강권하며 “우리가 당신을 제대로 대접하고 있다는 걸 부인께서 아셔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안젤로 구겔을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1세로부터 “물려받았다.” 알비노 루치아니가 베네치아에서 알고 지내던 구겔을 자신의 시종으로 로마에 초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한 달도 채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안젤로는 완전히 새로운, 그리고 전혀 알지 못했던 주인을 모시게 되었다.
그는 폴란드 출신 교황이 즉위 후 첫 공개 미사 날, 그를 서재로 불러 그리스도 중심적 용기와 복음화를 촉구하는, 훗날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강론을 읽어 주고는 자신의 이탈리아어 발음을 고쳐 달라며 연필로 교정 표시를 하던 모습을 통해 새 주인의 인품을 곧 알아차렸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관저는 교황의 직책을 고려했을 때 독특한 형태였지만, 일종의 가족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교황 관저는 존중과 절제, 격식과 비격식의 변증법 속에서 운영되었으며, 기도 안에서 우정의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어느 한 번, 그 기도는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바티칸 뉴스는 안젤로와의 인터뷰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안젤로의 아내 마리아 루이사가 네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그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루치아니)와 요한 바오로 2세(카롤 보이티와)를 기리기 위해 아이의 이름을 카를라 루치아나 마리아로 지을 계획이었다—“자궁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제멜리 종합병원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신을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젤로의 증언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당신 아내를 위해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4월 9일, 마리아 루이사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후 한 의사는 “누군가가 아주 많이 기도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출생증명서에는 “오전 7시 15분”이라고 적혔는데, 그것은 교황의 아침 미사가 상투스(Sanctus, 거룩하시도다)에 이른 정확한 순간이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토비아나 수녀가 교황에게 카를라 루치아나 마리아가 태어났다고 전하자, 교황은 “데오 그라티아스(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4월 27일, 교황은 자신의 개인 경당에서 직접 그 아이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나는 10여 년 동안 교황 관저를 자주 드나들었지만, 안젤로 구겔과 나눈 말은 미소 몇 번을 제외하면 열 마디도 되지 않았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고, 주목받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한 성인을 섬기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은총의 옥좌(Throne of Grace) 앞에서 옛 스승과 다시 만나 안식하기를 빈다.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