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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14일 토요일 오후, 오전의 개인 일정을 마치고 교대역으로 갔다. 4번 출구로 나와 강남역으로 걸어가다가 족저근막염이 아직 완전히 낫지를 않음을 느끼고 유원아파트 버스정류장의 긴 의자에 앉았다. 오늘 신논현역 7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자유대학의 행진을 기다리기 위해서이다. 의자가 따듯하였다.
추운 날씨이어서 의자에 열선을 깔은 모양이다. 이런 의자는 여기만이 아니다. 도처의 버스정류장이 거의 모두 그렇다.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 싶다. k-벤치 또는 k-버스정류장이라 명명하며 세상에 알려도 괜찮을 듯 하다.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행진 대열은 오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니 예전과 달리 출발 지역에서 바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를 하고 있었다. 계속 기다리니 경찰관이 네 개의 차선 가운데에 빨간 색의 플라스틱 트래픽 콘을 놓기 시작하였다. 행진에 대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두 분의 꽃띠 할머니가 와서 내 옆에 앉았다. 버스가 와도 타지를 않는다.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라 걱정의 이야기이다. 나처럼 자유대학 행진을 기다리는 것이다. 조금 지나자 할아버지 두 분이 와서 나와 할머니 사이의 좁은 빈 자리에 앉는다. 그들 역시 대화하는 내용을 들으니 행진 대열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말없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니 흐뭇하였다. 모습은 할아버지이지만 그들의 대화는 수준이 매우 격조가 높았다. 한 때는 한 자리 차지했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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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그렇게 1시간여를 지나니 함성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행진대열이 오는 신호이다. 곧 맨 앞의 선도 차량과 행진참여자의 속도를 조절하는 분이 보였다. 평소 친분이 있는 분이어서 손을 들어 수고에 감사를 표시하였다. 나는 대열이 내 앞을 지날 때마다 그들을 향해 양손에 엄지를 힘껏 쥐고 그들이 외치는 자유대학 행진가에 동조를 표시하였다. 일부는 내게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하였다.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1심 선고를 며칠 앞둔 날인지 한 마디로 엄청 많은 대열이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보도를 안할 것이라 생각하니 씁쓸했다... 행진에 참여하는 남녀 청년들의 윤 대통령 무죄 주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울림의 크기가 우리같은 실버들과는 전혀 달랐다. 1당 10은 되지 않나 싶었다.
행진대열이 지나갈수록 내 마음은 더욱 뜨거워졌다. 미세먼지가 매우 나쁜 날씨이어서 마스크를 썼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감격에 겨운 내 벅찬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날 뻔했다. 그런 순간에 고개를 돌려 행진참여자를 정면에서 피하고 그들 뒷모습을 향하였다.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많이 본 얼굴이 보였다. 선글라스를 끼었지만 자주 보았기에 단번에 알았다. 전한길 강사와 김현태 707 단장의 얼굴이다. 그들도 나를 보았는지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한참을 서로 보며 손을 흔들고 마음을 함께 하였다. 어쩌면 뒷날 전한길 선생은 유튜브 방송에서 자신을 향해 연도에서 열심히 환호하는 어느 실버를 언급할지도 모르겠다. 자유대한민국을 간절히 바라는 눈을 보았다고 말이다.
전한길 일타 강사는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60억 원을 포기한 분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다. 일부는 어쩌궁 저쩌궁 하지만 그런 분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전한길 샘의 1000분의 1, 1만분의 1 이라도 실행해 보라고. 그래도 나는 500분의 1은 실행하고 있다고 자위를 한다.
그는 최근에 5개월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지지자들의 90%는 돌아오지 말 것에 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돌연 돌아왔다. 호랑이를 잡으려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심정일 것이라고 추정을 한다.
최근에 그는 자유한길단을 만들고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10만 명을 목표로 하는데 현재는 5만 명 정도 근접한 것으로 안다. 그가 왜 10만 명을 목표로 했는지? 그리고 카페 명칭의 끝에 왜 ‘단’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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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한길 강사와 김현태 전 707 단장 - 인터넷 캡쳐 |
어떤 사람이 ‘단’을 ‘당’을 잘못 알고 표기한 것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왜 ‘단’이라고 했는지 안다. 아마도 도산 안창호 선생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도산을 파는 도산팔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는 지금까지의 행동과 말을 종합하면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참’을 생명으로 삼는 정신의 소유자가 전한길 선생이 아닌가 한다.
여하튼 오늘 연도에서 자유대학의 행진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도산 선생은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라고 하였다. 바로 청년이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오늘의 무너져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낙망하지 않고 내일의 대한민국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청년들이 있고, 그 숫자가 점차 늘고 있기에 우리 민족이 중국에 흡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은 k-를 바탕으로 반만 년 이전의 영광을 되찾는 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 날을 빨리 가져오려면 우리는 뭉쳐야 한다. 국민의힘과 야 4당은 하나의 빅텐트를 쳐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청년들이 주역이 되도록 뒤로 물러서고 그들을 앞에 모셔야 한다. 그렇다고 뒷전에 있어서는 안된다.
한 때는 역사와 달리 실버혁명을 기대하였지만 역사는 변치 않는다. 청년이 역사일 때에 역사는 전진한다. 앞에는 청년이, 뒤에는 실버가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
송·준·호 <대한민국투명세상연합 상임대표, 전 안양대학교 대학원장,
전 국민권익위원회 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