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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로 옥중 사망한 알렉세이 나발니 |
2년 전 옥중에서 의문사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 원인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스웨덴 등 유럽 5개국은 14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통해 “나발니의 생체 시료 분석 결과, 치명적 독소인 ‘에피바티딘(Epibatidine)’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이들 국가는 해당 물질이 남아메리카 독침개구리에서 발견되는 강력한 신경독으로, 러시아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라고 지적했다. 성명은 “러시아가 주장해온 ‘자연사’ 설명은 설득력을 잃었다”며 “독성의 특성과 사망 당시 증상을 종합할 때 중독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에피바티딘은 소량으로도 신경계를 강하게 자극해 마비와 호흡정지를 초래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의료 연구에서는 진통 효과 가능성이 거론된 적도 있으나, 독성이 지나치게 강해 실제 임상 활용은 제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독소가 체내에 투입될 경우 급격한 신경계 교란과 호흡 기능 상실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유럽 5개국은 “나발니가 구금 중 사망했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은 그에게 독을 투여할 수단과 기회, 동기를 모두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공동 성명은 또한 러시아가 과거 화학무기금지협정(CWC)을 반복적으로 위반해온 전례를 상기시키며, 이번 사건이 생물·독소무기금지협약(BTWC)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들 국가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공식 서한을 보내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유럽 측은 “러시아에 책임을 묻기 위해 가용한 모든 외교·법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추가 제재나 국제형사 절차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편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 중 하나에 중독됐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이 독은 마비와 호흡정지, 고통스러운 죽음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독살을 확신했으며 이제 과학적 증거가 나왔다”며 “푸틴은 화학 무기로 알렉세이를 살해했다. 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나발니는 러시아 고위층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부상한 인물이다. 그는 2020년에도 독극물 중독으로 독일에서 치료를 받은 바 있으며, 이후 귀국 직후 체포돼 수감됐다. 여러 혐의가 추가되면서 형량은 30년으로 늘어났고, 2024년 2월 교도소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러시아 당국은 줄곧 ‘자연사’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독소 검출 발표로 국제사회와 러시아 간 외교적 긴장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사망 원인 규명을 넘어, 러시아의 국제협약 준수 여부와 인권 문제를 둘러싼 서방과의 구조적 갈등을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나발니 사망 사건은 이미 러시아 내 정치적 탄압 논란의 상징이 된 상태다. 유럽 5개국의 공동 규탄이 추가 제재와 외교적 압박으로 이어질지, 혹은 국제기구 차원의 공식 조사로 확대될지는 향후 외교적 공방 속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