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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유페이 주(余飞柱)의 삶은, 중국 공산당이 국내 억압을 어떻게 해외로 확장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압축된 사례다.
그의 궤적은 ‘체제 내 전문가’에서 ‘망명 반대 인사’로의 이행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체제 내부에서 시작된 각성
유페이 주는 1994년 대학을 졸업한 뒤 독학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8년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2009년 충칭에서 로펌을 설립한 그는 초기에는 일반 사건을 맡았지만, 점차 공권력 남용·신앙의 자유·시민권 침해 사건을 접하면서 “중국 법치의 구조적 혼란”을 체감했다고 말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확산되면서 그는 공적 공간에서 발언하기 시작했고, 이 시점부터 자신이 당국에 의해 ‘예민한 인물’로 분류되고 있음을 감지했다. 2011~2012년을 기점으로 감시와 압박은 일상화되었다.
■ ‘709 사건’,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
2015년 7월 9일, 중국 전역의 인권 변호사들을 강타한 ‘709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심야에 경찰이 들이닥쳐 그를 연행했고, 이후 7년간 출국 금지 조치가 이어졌다. 호주에서 유학 중이던 딸과의 만남도 사실상 차단됐다.
2023년 여름, ‘조건부 승인’으로 잠시 해외 방문이 허용됐지만, 사전 일정 보고·실시간 위치 전송이 요구됐다. 그는 이를 “자유로운 출국이 아니라 이동형 감시”라고 회고한다.
2023년 그는 후신위 사건과 장다오잉 사건을 연이어 맡았다. 후신위 사건에서 그는 공식 사망 발표와 증거의 불일치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았고, 장기 이식과 관련된 외부 의혹을 전달했다. 당국은 진상 대신 ‘문제 제기자’에 초점을 맞췄다.
장다오잉 사건에서는 경찰이 민원을 제기한 시민을 정신병원 감정으로 보내려 한 정황을 폭로했다. 유 변호사는 이를 “의료 시스템의 안정유지 도구화”라고 규정했고, 이 발언은 체제에 대한 직접 도전으로 간주됐다.
그 이후 그는 감시 단계에서 ‘청산 단계’로 넘어갔음을 분명히 느꼈다고 말한다.
■ “지금이 청산할 때다”
2023년 9월 25일, 충칭 당국 관계자들은 그에게 노골적으로 말했다. “공산당은 나중에 반드시 결산한다. 지금이 그때다.” 같은 날, 공안과 국보 인사와의 면담에서는 더 강한 통제 신호가 전달됐다.
거의 동시에 세무 당국은 미종결 사건의 보증금을 소득으로 간주해 거액의 세금과 벌금을 부과했다. 그는 이를 “경제 수단을 활용한 정치적 청산”이라고 판단했다.
2023년 10월, 그는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출국은 보호막이 아니었다. 중국 내에서는 세무 처벌 확정, 업무 정지 요구, 변호사 자격 심사 탈락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동료·의뢰인에 대한 조사도 계속됐다.
그는 “연심(연례 심사) 제도는 법률 관리가 아니라 정치적 통제 장치”라고 비판한다.
■ 초국가적 탄압의 논리
유 변호사는 중국 공산당의 해외 탄압을 우발적 사건이 아닌 체제의 필연으로 본다. 그는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정권은 의심 자체를 위협으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해외에서도 가족 위협, 자격 박탈, 외교공관을 통한 압박이 동원된다.
2024년 1월, 로스앤젤레스 중국 영사관 인근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 이후, 그는 해외 인권 변호사들을 규합해 대응에 나섰다.
2023년 11월, 시진핑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유 변호사는 현장에서 공개 질문을 던졌다. 직후 중국 당국은 전화를 걸어 발언 자제를 요구하며 국내 가족에 대한 ‘영향’을 암시했다.
그는 이 통화를 생중계로 공개했다. 이후 노골적 위협은 줄었지만, 행정·형사 압박은 계속됐다.
■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반대가 아니라 폭로”
미국 도착 후 그는 망명 변호사들과 함께 ‘중국 해외 인권 변호사 연맹’을 설립했다. 목표는 명확하다. 일당 독재의 해체, 국제사회에 대한 지속적 폭로, 그리고 국내 양심수에 대한 법적 지원이다.
그는 또한 강제 장기 적출 문제를 “국가 차원의 중대 범죄”로 규정하며 국제적 책임 추궁을 촉구한다.
유페이 주는 중국 공산당을 무너뜨리는 핵심은 무력이 아니라 “진실의 확산”이라고 말한다. 정보 봉쇄를 깨고 시민 각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결론은 단순하지만 단호하다.
“인민은 백 번, 천 번 질 수 있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질 수 없다.”
체제 내 변호사에서 망명 인사로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중국 공산당이 국내 억압을 어떻게 국경 밖으로 확장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억압이 오히려 정권의 취약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