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미드타운 이스트 50번가에는 한 스테이크하우스가 있다. 나는 종종 뉴욕 대교구장인 티모시 돌란 추기경의 응접실에서 식전주를 한두 잔 나눈 뒤, 그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그곳까지 걸어가곤 했다.
그 식당은 뉴욕 대주교 관저에서 한 블록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아, 보통 걸으면 2~3분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돌란 추기경과 함께라면 대개 10분, 때로는 15분이 걸렸다. 길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대주교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일에 대해 감사를 전하거나, 그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장면을 여러 차례 지켜보았고, 그것은 돌란 추기경의 전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존 오코너 추기경이 1996년, 내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했던 말이 떠오르게 했다. “그분이 뜻한 바는,” 오코너 추기경은 이렇게 답했다.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교황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입니다.”
추상적으로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퀴즈 프로그램의 정답처럼이 아니라, 높은 직위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실제로 의미 있는 개인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 분으로서 말이다. 의지할 수 있는 분, 우러러볼 수 있는 분, 자신들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분.. 사실상 사랑해 주는 분으로서 말이다.
지난 17년 동안 뉴욕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대주교가 있음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사람들에게 “교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던 바로 그 의미에서였다.
지난해 12월, 교황 레오 14세가 돌란 추기경이 1년 전 만 75세 생일에 교회법상 제출해야 했던 사임을 받아들였다는 발표가 있은 이후, 돌란 추기경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그리스도교적 기쁨을 독보적으로 체현한 인물이라는 점, 친근함과 영적 깊이를 결합한 탁월한 강론가라는 점, 신학교 총장으로서 뛰어난 사제들을 양성한 성과, 미국 주교회의에서의 지도력, 그리고 세상의 권력과 협력할 줄 알면서도 필요할 때는 그들에게 가혹한 진실을 말할 줄 알았던 용기에 대한 찬사였다. 나는 여기서 지금까지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을지도 모를 세 가지 측면에 집중하고자 한다.
첫째, 대중 앞에서 늘 미소 짓는 사교적인 아일랜드계 미국인 ‘큰형’ 혹은 ‘삼촌’ 같은 모습 이면에, 티모시 마이클 돌란은 매우 진지한 지성인이다. 그는 아마도 미국에서 가장 독서량이 많은 주교일 것이다. 우리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그 응접실은 새 책들로 넘쳐났는데, 그것들은 장식용이 아니었다.
이미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이었다. 내가 추기경에게 언급한 책 가운데 그가 들어보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처음 듣는 책이라면 곧바로 주문했다. 미국 가톨릭 역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돌란 추기경은 이 나라에서 가톨릭이 걸어온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방대한 역사적 일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그의 스승이었던 위대한 존 트레이시 엘리스에게서 전해 들은 것들이었다.
둘째, 돌란 추기경은 맹렬할 정도로 충직한 친구다. 그가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스뱌토슬라브 셰우추크 대주교(대주교좌를 가진 최고대주교)와 친분을 쌓은 뒤, 그는 곧 우크라이나 교회의 지도자를 옹호하고 보호하는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돌란은 러시아 정교회 ‘대외관계’ 부서 책임자인 힐라리온 알페예프 대주교가, 극히 무례하고 러시아 제국주의적 오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한 시노드에서 연설하도록 초청받은 자리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를 맹비난했을 때, 셰우추크 곁에 앉아 있었다. 그때 뉴욕의 추기경 대주교는 키이우-할리치의 최고대주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가고 싶다면, 나도 함께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난 4년 동안, 미국 내에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보리스 구드지악 대주교를 이처럼 적극적으로 지지한 주교는 돌란 추기경 외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돌란 추기경은 종교 자유를 끊임없이 수호해 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성 패트릭 대성당 안에 홍콩의 양심수 지미 라이를 기리는 작은 성소를 조성한 일이다. 정권 친화적이거나 이미 타협한 중국인들이 뉴욕에서 항의했지만, 추기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젊은 시절의 팀 돌란은 본당 사제가 되는 것 외에 다른 무엇도 원한 적이 없었고, 그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본당 사제다. 친구가 병들면 직접 전화를 건다. 밀워키와 뉴욕에서 대주교로 봉직하는 동안, 본당 방문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목자의 순간들이었다. 그가 봉직했던 곳마다 거의 모든 이들이 그의 떠남을 아쉬워했다. 불행히도, 모든 고위 성직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월 6일부로 그는 더 이상 뉴욕 대교구장이 아니다. 그러나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티모시 돌란 추기경은, 결코 자신의 사목과 영향력의 끝자리에 서 있지 않다. 그의 존재감은 앞으로도 수년 동안 미국 안에서, 그리고 로마에서 계속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