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67] 성인들의 빛
  • 요나 텔러 Fr. Jonah Teller, O.P., is a Dominican friar of the Province of St. Joseph. He serves as parochial vicar at St. Joseph’s Catholic Church in Greenwich Village in New York City. 성 요셉 관구 도미니코회 소속 신부

  • 이 글은 위대한 가톨릭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그리스도인 오케스트라 ‘Higher Word’가 주최한 최근의 모든 성인 대축일 행사에서 전한 강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밤하늘의 별 이름을 몇 개나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북극성 정도, 그리고 천문학 시간에 배운 메라크(Merak), 리겔(Rigel), 베텔게우스(Betelgeuse) 같은 몇 개일 것이다. 그 이상은 많지 않다. 그러나 별은 셀 수 없이 많다. 비록 도시의 불빛 공해를 피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은 하늘의 극히 작은 한 부분일 뿐, 우리의 시야 너머에는 무한한 빛의 우주가 숨어 있다.

    성인들도 이와 같다. 우리가 이름을 아는 몇몇 성인들 너머에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묵시 7,9)가 있다.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의 어둠에서 눈을 들어, 수많은 인간의 삶 속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묵상하도록 초대한다. 성인은 너무나 많아서, 이름을 아는 이들만 기념하기에도 한 해의 날수가 부족하기에, 우리는 그 모두를 함께 기념하는 하루를 따로 정해야 한다.

    모든 성인은 한 가지 열망,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에 의해 움직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그리고 그 말씀은 지금도 은총을 통하여 계속하여 육화(肉化)되고 계신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살기를, “만 갈래의 자리에서, 당신 것이 아닌 손과 눈 안에서 아름답게”(제럴드 맨리 홉킨스, As Kingfishers Catch Fire) 살기를 원하신다.

    성인들은 모두 함께 하나의 생명, 곧 예수님의 생명을 산다. 그들은 자신의 삶 전체로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을 따르라” 이 표현은 너무 자주 들어 힘을 잃은 말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성인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들의 사고방식, 선택, 말, 걸음, 행위, 삶의 모든 것이 그들을 살게 하신 그 하나의 생명에게 온전히 내어 맡겨졌다는 뜻이다.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필리 1,21). 성인들은 가진 모든 것으로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그분이 빛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렸고, 그분의 마음속에 타오르던 목적이 자신들의 마음도 불태우도록 허락했다.

    그 목적은 무엇인가? 말씀께서 왜 사람이 되셨는가? “어느 누구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 품 안에 계신 외아드님, 하느님께서 그분을 알려 주셨다”(요한 1,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는 성부를 드러내시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인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이 너희의 선행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어두운 밤하늘 속의 별 하나하나를, 빛 자체의 선함을 증언하는 표징으로 생각해 보라. 드물게 인용되는 예언자 바룩은 이렇게 주님을 찬미한다. “별들은 제자리에 있으면서 주님 앞에서 빛나고 기뻐한다. 그분이 부르시면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며, 창조주를 위하여 기쁨으로 빛난다”(바룩 3,34).

    이것이 바로 모든 성인의 이야기이다. 모두가 같은 목적을 향해 빛나지만, 각자는 놀랍도록 다르다. 수년간 정욕을 끊지 못해 괴로워했던 성 아우구스티노, 순결을 지키기 위해 열세 살도 되기 전에 순교한 성녀 마리아 고레티, 일곱 마귀가 쫓겨난 성녀 막달라 마리아, 첫영성체의 황홀경 속에서 아홉 살에 생을 마친 성녀 이멜다 람베르티니.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서로 닮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생명이 남녀의 영혼 안에 스며들 때, 그 생명이 이렇게 다채롭게 표현된다는 것은 실로 놀랍다. 그것은 아름답고 또한 위로가 된다. 이는 나의 삶 또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빛날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비록 그 대가가 온전히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것만큼 크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내가 근본적으로 찢겨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필자가 봉직하는 본당의 성체조배 경당에는 하느님의 자비 성화 모자이크가 있다. 그 안에는 금빛, 검정, 회색, 붉은색, 푸른색, 갈색, 흰색의 조각들이 섞여 하나의 이미지를 이룬다. 성인들은 이 모자이크의 조각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성령의 예술적 섭리에 내어 맡겼다. 어떤 이의 삶은 모서리의 작은 회색 조각일지라도, 그 조각 역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드러내는 작품 속에 들어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다. 그래서 성 이레네오의 말은 다시 참됨이 드러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다.” “주님, 우리에게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시편 115,1).

    모든 성인 대축일 미사 후 기도에서 교회는 이렇게 고백한다. “홀로 거룩하시고, 당신 모든 성인 안에서 놀라우신 하느님, 저희는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여기에는 거룩한 이들 사이의 생명의 상호 내재(內在)가 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거처를 성인들의 마음 안에 두시며, 그렇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신다.

    성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따르라!” 그들은 우리의 삶의 참된 지평선을 보여준다. 실패와 고통, 죽음을 우리의 시야가 멈추는 지평선으로 삼기는 얼마나 쉬운가. 이 세상, 이 답답한 공기 속에 갇혀 사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성인들은 그 공기를 뚫고, 하늘의 별처럼 우리에게 참된 지평선을 가리키며 외친다. “와서 우리를 따르라! 더 멀리, 더 높이 오라!”

    성인들은 어둠 속에서 희망을 준다. 고통, 혼란, 불안, 상실, 배신, 죄 앞에서도 희망을 준다. 그들은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지만, 어둠은 그것을 이기지 못하였다”(요한 1,5)는 희망을 우리에게 확신시킨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다른 이를 위한 희망이어야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예수 그리스도의 빛의 희망을 체험했다면, 그 희망이 다른 이들에게 흘러넘치게 해야 한다.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날이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말하건대, 내가 곧장 천국에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안다. 정화의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의 기도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내 영혼의 창문이 완전히 깨끗해져 하느님의 빛이 완벽히 비추도록 정화되는 동안 말이다.

    우리는 죽음으로 서로 단절되지 않는다. 죽음과 함께 삶은 변할 뿐, 끝나지 않는다. 사랑도 변할 뿐,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돕는다. 묘지를 지나며 기도할 때, 서로를 위해 미사를 봉헌할 때,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그들을 맡기고 그분의 자비와 치유를 구할 때,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이렇게 믿는다.

    결국 연옥의 모든 영혼은 성인이 될 것이다.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창조주를 향한 기쁨으로 빛나는 하늘의 별이 될 것이다.

    모든 거룩한 남녀 성인들이여, 하느님의 성인들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11-04 07:37]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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