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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68 |
조선신보가 최근 실은 글은 평범한 동포 가정의 추억담과 교원들의 체험담을 엮어내며 신문의 “친근한 벗” 역할을 강조했다.
결혼 직후 부부가 기사를 소리 내어 읽었다는 이야기, 80세가 넘어서도 신보가 도착하지 않으면 안달을 낸다는 남편의 태도, 그리고 매년 신문 속 ‘크로스워드’에 기뻐한다는 교원의 고백까지, 표면적으로는 신문과 독자의 애정 어린 관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이 모든 서술은 현실을 왜곡한 선전의 한 단면일 뿐이다.
신문을 읽는 일이 단순한 여가활동이나 문화생활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사상 주입과 체제 충성의 훈련에 불과하다. 기사를 소리 내어 읽으며 “조국과 조직과의 만남”을 경험했다는 표현은 언론이 개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확장시키는 창구가 아니라, 집단주의와 체제 충성으로 끌어들이는 통로임을 보여준다.
교원으로 일하며 학생들의 기사에서 “그리움과 보람”을 느낀다는 회고 또한 결국은 국가가 요구하는 모범적인 서사에 자신을 맞추는 자기검열적 발언일 뿐이다.
해외 동포 사회에서 모국어 신문이 주는 친숙함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신보가 전하는 ‘우리 글로 된 조국 소식’은 결코 사실 보도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북한의 정치적 필요와 이념에 맞게 가공된 소식만이 전달되며, 동포 사회는 이를 통해 현실과는 동떨어진 ‘조국의 발전상’에 노출된다. 즉, 언론 본연의 기능인 다양성과 비판적 정보 제공은 사라지고, 체제 미화와 선동의 도구로만 남아 있다.
조선신보가 강조하는 ‘생활 속의 신문 사랑’은 사실상 독자들의 언론 선택권이 부재한 현실을 은폐하는 장치다.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했다면 과연 80년 세월 동안 한 신문에 매달려야 했을까?
진정한 언론은 독자에게 충성심을 강요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실과 다양한 의견을 통해 사고를 확장시키는 매개체여야 한다. 그러나 조선신보의 기사 속 “만남과 기쁨”은 결국 선전과 통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