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성서공회(Bible Society)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그리스도교 상황에 관한 새로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제목은 「조용한 부흥(The Quiet Revival)」이었지만, 그 반향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끊임없는 쇠퇴 끝에, 성공회, 가톨릭, 감리교처럼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교회 공동체들에서 실제적이고 진정성 있는 회복의 조짐이 보인다면, 그것은 분명 주목할 일입니다. 이는 또한 오늘날 사회의 커다란 일부가 가지고 있는 전제, 기대, 바람과도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보고서는 전문을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만, 요지는 명확합니다. 최근 몇 년간, "영적 기류의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영국적인 표현입니까!) 이런 변화는 이미 오랫동안 공기 중에 감돌고 있었지만, 이제 성서공회에 따르면 “교회는 지금 젊은이들, 특히 젊은 남성들에 의해 견인되는 급속한 성장기의 한복판에 있다”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가 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을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즉,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표기하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성당이나 교회에 나간다고 응답한 사람)이라고 밝힌 성인 수가 2018년 370만 명에서 2024년에는 580만 명으로 급증했으며, 이는 무려 56% 증가에 해당합니다. 같은 기간 동안,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층에서 월 1회 이상 성당이나 교회에 나간다고 응답한 비율은 4%에서 16%로 4배 증가했습니다. 가장 큰 수혜자는 가톨릭과 오순절 교회이며, 두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와 The Church in Wales)는 상대적으로 그 열매를 덜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구체적이고 놀라운 주장들에 들어가기 전에, 전반적인 평가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습니다. ‘영적 기후’라는 표현이 다소 시적인 은유일 수는 있지만, 실제로 영국의 사회-종교 문화 내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은 틀리지 않습니다. 저는 지난 수십 년간 사회가 ‘영적 집단면역’을 구축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생명력을 잃은 그리스도교의 형태가 끊임없이 공급되며, 사람들은 ‘살아 있는 복음’에 접촉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복음이 마치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다시금 흥미롭게 다가오는 시점이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국의 세속화는 지난 60년에서 500년에 걸쳐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제 세속화가 거의 완료된 지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특히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세속화의 절정기(Peak Secularization)’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향은 상승뿐입니다. 문화적·지성적 반골들이 새로운 세대로 등장하면서, 그들의 조부모 세대가 간과했던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 독자들, 즉 ‘부흥’이라는 단어에서 케인 리지 집회(Cane Ridge),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또는 최근의 애즈베리(Asbury) 대각성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흥’은 점진적이고 아직은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시작되는 회복의 시기입니다.
지금까지의 징후는 미세하지만 분명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의 경우, 많은 본당이 최근 몇 년보다 더 많은 개종자 수를 보고하고 있습니다. 주일 미사 참석자 수는 팬데믹 이후 급감한 시기를 지나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이민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쇠퇴의 시기에도 이민은 계속 있었음을 고려하면, 단순한 이민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쇠퇴의 말기에 남아 있는 신자들은 분명 무언가의 이유가 있어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신앙공동체가 올바른 환경에서 상호 격려와 증진의 시너지를 만들어내면, 베네딕토 16세 교황(그분은 아널드 토인비의 말을 인용했습니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의 역동성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야말로 타인을 다시금 신앙으로 이끌 수 있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조용한 부흥」의 기본 개념에 어느 정도 설득당한 이들조차, 성서공회가 주장하는 현상의 규모에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2018년 이후 신자 수가 210만 명이나 증가했다는 주장은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월 1회 참석자일지라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주 평균 50만 명 정도는 더 성당이나 교회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톨릭과 성공회 모두에서 주일 미사나 예배 참석자는 팬데믹 이전보다도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오순절 교회가 얼마나 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4천에서 1만7천 개라는 추정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이 새로운 젊은 개종자들이 모두 거기 숨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의심스럽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남성 신자에 관한 통계입니다. 물론 교회에 열정적인 영국의 젊은 남성들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저 역시 그런 이들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최근 들어 신앙을 갖게 되었거나, 다시 돌아왔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는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주말, 저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성당에 나왔다는 75세 신자와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6년 사이 그들의 수가 5배로 급증했고, 지금은 여성 신자보다 많다는 주장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금요일의 이슬람 공동체 기도라면 모를까, 주일 성찬례에서 그런 변화는 의심스럽습니다.
공정하게 보자면, 성서공회가 좀 더 신빙성 있는 근거를 제시한 부분도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 공동체의 민족적 다양성입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교회는 이민으로 인해 매우 큰 순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둘째는 가톨릭과 오순절 교회의 상대적 강세입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번창하고 있는 성공회 본당도 많습니다. 그러나 “18~34세 교회 출석자 중 성공회 신자는 2018년 30%에서 20%로 감소했으며, 가톨릭은 41%, 오순절 교회는 18%”라는 보고서의 주장은 사실로 보입니다.
제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도, 2주 전 주일 미사에서는 18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이들이 성당 뒷편의 ‘여분 공간’에 가득 차 있었고, 길 건너의 성공회 카페 예배에는 그만한 숫자의 신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통상, 어떤 종교 연구가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는 그 수치가 너무 자극적이어서 누가 실수했는지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결론 내릴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조사의 직접적인 참여자는 아니지만, 성서공회 팀 중 몇몇과는 만난 적이 있고, 보고서 공동 저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훌륭하고 엄격한 학자들입니다. 2018년과 2024년 모두 조사는 명망 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YouGov가 수행했습니다.
보통 과장된 결과의 원인은 작은 표본 크기나 하위집단 분석의 오류 때문이지만, 이번엔 그런 이유가 아닙니다. 2024년 조사는 9천 명 이상이라는 매우 큰 표본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는 사회조사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수치입니다. (미국 사회학계의 금본위격인 General Social Survey조차 각 조사에 약 3천 명을 포함하며, 이는 영국과 웨일스보다 5배나 큰 성인 인구를 대표하려는 시도입니다.)
제가 보기에, 성서공회는 모든 절차를 정석대로 진행했으며, 그 방법론의 신뢰성을 당당히 주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뭔가 잘못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전체 방법론이나 원자료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YouGov 웹사이트에 좀 더 상세한 버전이 있긴 합니다. 제 추측으로는 표본 구성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을 처음 어떻게 모집했는지가 핵심일 것입니다.
오늘날 여론조사 기관은 무작위로 전화를 걸지 않습니다. 대신 거대한 자원자 풀을 확보한 뒤, 다양한 할당 기준에 맞는 인물들을 선별하여 조사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합니다. 이 방식이 분명 타당한 이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국 대표 표본”이라는 표현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항상 충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조용한 부흥」이 실제적인 무언가를 포착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어떤 방법론적 ‘장난’에 의해 지나치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