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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홍콩 경찰은 해외에서 활동 중인 민주화 운동가 19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들 중 15명에게는 1인당 약 3,500만원에 달하는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이들의 혐의는 ‘국가 전복 시도’, 그 근거는 단 하나,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이 홍콩 시민의 민주적 대의를 대변하기 위해 ‘홍콩의회’를 만들고 선거를 실시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홍콩에서 “의회”라는 단어조차 국가전복의 음모로 취급된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망명 속 민주주의 실험, '홍콩의회'의 탄생
문제의 ‘홍콩의회’는 2022년 캐나다에서 만들어졌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탄압을 피해 해외로 도피한 활동가들이 모여, 중국 정부가 허수아비처럼 만든 홍콩 입법회에 맞서 민주적 정통성을 되살리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들은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망명정부 모델을 참고했으며, 실제로도 온라인 투표를 통해 대표 15인을 선출하고 선서식을 거행했다. 1만 5천여 명의 홍콩 디아스포라가 참여한 이 선거는, 명백히 시민사회 차원의 비폭력적이고 자발적인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의 눈에는 이것이 “국가 전복 기도”로 비쳐졌다. 중국과 그에 종속된 홍콩 당국은 이제 해외 망명자들의 ‘의회 놀이’마저도 공포의 대상으로 본다. 불법선거를 이유로 현상금을 내거는 그들의 행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전체주의적 조롱의 그림자다.
‘현상금 민주주의’의 도착, 표현의 자유 위에 가격표가 붙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법 집행이 아니다. 이는 명백한 위협이자, 공포의 확산을 노린 ‘공안정치의 연장선’이다.
활동가들에게 붙여진 현상금은 단지 체포를 위한 유인책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홍콩 디아스포라 전체에 던지는 협박이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 대안적 정치 공동체를 상상하는 자, 해외에서조차 자유롭게 말하려는 자들에게 “너의 목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경고하는 셈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규범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은 표현의 자유와 평화적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
홍콩은 중국과 함께 이 조약의 당사국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면 ‘국가 전복’, ‘해외에서 의회를 만든다’면 ‘무기징역’이 되는 기형적인 법 집행이 바로 홍콩의 오늘이다.
홍콩보안법, 법이 아닌 정치 무기의 이름
2020년 6월 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본래의 명칭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적용 방식은 전형적인 정치적 통제 도구에 불과하다.
“국가 전복”, “분열”, “외국 세력과의 결탁”이라는 모호한 용어들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무차별적 탄압의 구실이 되고 있다. 법적 명확성이나 비례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캐나다나 영국, 대만 등에서 온라인 선거를 열고 비정부기구 차원의 대표 선출을 한 것만으로도 국가범죄자로 낙인찍힌다. 체포자 수는 이미 300명을 넘어섰고, 유죄 판결자만 165명에 이른다.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는 처형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침묵할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낼 때다. 단순한 언론 성명이나 외교적 ‘우려 표명’으로는 부족하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해외에서 의회를 만든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현실을 묵과하는 것은, 단지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자체가 국경을 초월해 위협받고 있다는 징후다.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다. 홍콩의 오늘은 타인의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다양성을 억압하는 정권의 논리는 아시아 어디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더 많은 민주국가들이 홍콩 디아스포라의 권리를 지지하고, 중국 정부의 압박에 맞서 행동해야 한다.
의회를 만드는 것이 죄가 되고, 온라인 투표가 국가전복이 되며, 표현의 자유에 현상금이 붙는 도시. 이것이 바로 오늘의 홍콩이다. 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 현상금으로 포장된 공포정치에 세계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무력한 정부에 대한 반란이 아니라, 무자비한 정부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홍콩의회는 그 희미한 불씨다. 그 불씨마저 끄려는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