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 사이에는 오래된 관행이 있다. 어떤 인물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자신의 판단에 도덕적 정당성을 입히며,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류가 모든 대륙과 바다에서 저질러온 수세기의 죄악을 건너뛰고, 인류 역사상 최악의 행위들을 상징하는 만능의 표현 하나에 착륙하는 것이다. 바로 “중세적(medieval)”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중세를 옹호하는 이들도 언제나 존재해왔다. 전통적인 통념을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혹은 아예 몰랐던 중세의 업적들을 성실히 해명해온 저자들이 그들이다. 이른바 ‘중세 변증학’이라 불릴 만한 이 연구 분야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기존의 편견을 실질적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일련의 아이디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9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조지 메이슨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의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은 실제 인간 사회의 행위 자료와 심리 실험 결과를 결합하여, 단순한 우연이나 상관관계를 넘어선 예측 가능성을 지닌 강력한 행동 패턴들을 밝혀냈다.
논문은 서구에서 높이 평가되는 심리적 특성—예컨대 타인과의 신뢰나 협력, 동조 압력에 저항하는 능력 등—이 중세 서방 교회의 영향, 보다 정확히는 사촌 간 결혼을 금지한 교회의 법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친족 중심의 충성 체계를 해체하고, 장기적으로 서구인의 정신구조를 재편한 것이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1년, 워릭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의 학자들은 과거 가톨릭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였던 지역의 현대 주민들이, 과거 동방정교회권이거나 무슬림 오스만 제국에 속했던 인접 지역 주민들보다 법원과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사이언스 논문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설명한다. 부족주의적 충성심이 약해질수록 부패가 억제되고, 낯선 이들 사이에도 신뢰가 정착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워싱턴 포스트 기사로도 이어졌는데, 이 기사에서 공동연구자였던 두만 바흐라미-라드(Duman Bahrami-Rad)는 이란 출신으로서(이란에서는 결혼의 30%가 사촌 간에 이루어진다), 미국에 처음 와서 “서구인들이 사촌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2020년, 또 다른 공동연구자이자 하버드 교수인 조셉 헨리히(Joseph Henrich)는 이 연구를 확장하여 『하느님 가설의 귀환』이라는 책을 펴냈고, 이는 영국에서는 앨런 레인(Allen Lane)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는 서구(WEIRD: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며, 인류사의 궤적이 이 특성들에 의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해설하고 있다. 사이언스, 워싱턴 포스트, 앨런 레인—이제 중세에 관한 새로운 시각은 세상에 퍼지고 있다.
여기서 2019년에 출간된 톰 홀랜드(Tom Holland)의 책 ‘지배(Dominion)’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은 출간 이후 줄곧 주목을 받아왔다. 한때 자신의 가톨릭적 성장 배경을 부정했던 저자 홀랜드는 이 책에서, 인권이라는 개념의 기원이 계몽주의 시대의 고상한 철학자들이 아니라 중세의 교회법학자들에게 있음을 주장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원리는 초기 교회 시절부터 있었으나, “가난한 이들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이른바 ‘대응 원칙’은 중세에 와서야 등장했다고 본다. 이러한 권리는 교회법 체계에서 점차 ‘인권(human right)’으로 정식화되었다. 또한, 교회와 국가의 분리 개념 역시 중세에서 유래한다. 그의 또 다른 저작 ‘밀레니엄’에서는 11세기 교황들이 종교와 세속의 구분, 즉 서구 문명의 핵심 구조를 사실상 창출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오늘날 지적설계론의 대표 학자인 스티븐 마이어(Stephen Meyer)도 있다. 그는 2023년 조 로건(Joe Rogan) 쇼에서 무려 세 시간 반 동안 대담을 이어갔다. 현대의 불신앙을 극복하려는 과학자가 중세 교황을 과학적 방법론의 기점으로 지목하는 것은 역설적일 수 있으나, 하느님 가설의 귀환(Return of the God Hypothesis)에서 마이어는 정확히 그렇게 한다.
그는 1277년 파리의 주교 에티엔 텀피에(Étienne Tempier)가 교황 요한 21세의 지지 아래 ‘필연의 신학(necessarian theology)’을 단죄한 사건을 언급한다. 당시 파리대학교 일부 교수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자연이 반드시 논리적 원리에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행성은 완전성만이 가능한 결정체(crystalline spheres) 영역에 속하므로 가장 완전한 운동형태인 원형 궤도를 따라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진보하려면 보다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접근이 필요했고,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중세 교회가 비합리적 전제를 단죄한 데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세에 대한 새로운 통찰들이 매우 광범위한 매체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주류 매체에 등장했다는 것이 곧 주류 사고방식으로 정착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대중적 수용은 끊임없는 반복과 인용, 회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하며, 그 시간은 수년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담론들은 이제 적어도 ‘주류 속의 자유요소’로 존재하게 되었다. 언젠가 서구 사회의 대중 의식이 하나의 충격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중 최고는 바로 중세적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