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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26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방중흥의 벅찬 숨결’을 운운하며 평안북도 산골마을에 세멘트를 운송하는 수풍호의 짐배 《진흥-1》호의 출항을 찬미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 ‘사랑의 배길’이라는 수사는 허술한 선전의 덧칠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번 보도는 북한 당국이 실질적 경제난과 인프라 붕괴를 얼마나 기만적으로 포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분석되어야 한다.
“산중의 바다”에 의존하는 비효율적 수송체계
노동신문은 마치 산중호수를 활용한 짐배 수송이 획기적인 아이디어인 양 칭송하지만, 이는 현대 물류체계에 대한 무지 또는 고의적 은폐에 불과하다.
육로나 철도 기반 물류가 정상적인 국가의 물자 이동의 골격임에도, 북한은 기반시설 붕괴와 에너지 부족으로 내륙지방조차 강·호수 수송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세멘트 몇 백 톤을 수동 유압기계와 화물차로 하역하는 장면은 발전이 아닌 비정상화의 방증이며, 거꾸로 말하자면 그만큼 교통 기반이 붕괴돼 있다는 뜻이다. ‘지형에 관계없이 배를 댈 수 있다’는 자랑은 오히려 부두나 항만시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백과 같다.
이번 기사 전반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정”이다. 선박의 건조부터 운항에 필요한 의장품까지 김정은의 ‘친필 보살핌’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못했음을 강조한다.
이는 곧 지방 물류, 주택, 농촌 건설 등이 제도적 시스템이 아닌 일회적 '최고지도자의 하달'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구조는 인민의 일상을 정치적 충성 체계에 종속시키는 전형적인 전근대적 통치 방식이며, 중앙집권의 폐해와 행정 무능을 더욱 심화시킨다. ‘은정’이라는 단어는 체계적 실패를 미화하는 은폐 수단이자, 공적 책임의 부재를 상징한다.
군중 동원의 미화: 자력갱생이 아닌 고립의 강요
벽동군의 살림집 건설을 예찬하며 등장하는 화물차 운전사, 군당 책임일군, 인민위원회 일군의 말은 모두 같은 문장을 되풀이한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은정”, “불같은 사랑”, “전설같은 이야기”… 그러나 이들은 국가 주도의 강제노동과 군중동원을 ‘영광’으로 착각하도록 유도된 반복 선전의 부산물일 뿐이다.
세멘트 수송을 혁명적 조치라고 칭송할 만큼 북한의 지방은 만성적 자재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는 자력갱생이 아닌 사실상의 국제 고립과 제재 회피 실패에 따른 자멸적 결과다.
기사는 “동서고금 그 어디에 있었던가”라는 수사로 북한식 정책의 유일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세계 어느 정부도 지방 농촌 건설용 자재 수송을 최고지도자의 특별지시로만 수행하지 않는다.
이는 국가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마비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며, 노동신문식 ‘세계자랑’은 국제 기준에서는 낯부끄러운 고백일 뿐이다.
결국 《진흥-1》호가 실어 나른 것은 단순한 건설 자재가 아니다. 그것은 체제 유지의 도구로서 기능하는 미화된 이야기, 곧 ‘혁명적 사랑’과 ‘현지지도 신화’를 통한 선전 그 자체다.
인민의 생활 개선이 아닌 충성심을 위한 물류, 제도적 인프라가 아닌 개인 숭배에 의존한 건설, 이것이야말로 북한식 지방진흥의 실상이다.
진정한 진흥은 배 한 척이 아니라, 인민이 자율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지금 북한이 해야 할 일은 ‘배고동’ 소리가 아니라, 구조 개혁의 종소리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