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60] 재통합의 요청 ②
  • R. R. 리노 『First Things』 편집장

  • 1950년 이후 미국 정치와 문화를 총망라하려는 시도는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중심 패턴은 명확하다. 수십 년에 걸쳐 탈통합에 저항하는 흐름도 존재했다. 조지 월리스는 인종주의에 기반한 대선 캠페인으로 유명하지만, 1964년 위스콘신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34%의 지지를 얻은 이유는, 그가 인종 이슈를 넘어서서 탈통합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박탈감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후 10년 만에 공화당은 자신을 '사회적 보수 정당'으로 재규정하며 탈통합에 대한 대중의 염려를 포섭하기 시작했다. 반면 민주당은 뉴딜 시대의 경제적 연대를 수호하되, 문화적으로는 탈통합을 지향하는 전위(前衛) 정당으로 거듭났다.

    1990년대에 이르면, 양당 모두 탈통합의 요청을 수용하게 된다. 1990년 「장애인법(ADA)」은 91–6이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고, 공화당 부시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서명했다. 이는 시민권 운동의 연장이자 미국 사회의 폐쇄성과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조치로 간주되었다. 반면 1993년, 민주당 지도자 게퍼트가 반대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동료 민주당원 100명의 지지 속에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서명되었다. 탈통합은 정치의 '지상 규범'이 되었다.

    양당 모두 불법 이민 문제를 회피했고, "다양성은 우리의 힘이다"라는 문구를 반복했다. 실리콘밸리의 요구에 모두 응했고, 조세와 경제 규제 논쟁은 매우 좁은 틀에서만 이루어졌다. 요약하자면, 2010년까지 공화당 엘리트는 '인권운동(HRC)'의 어젠다에 사실상 항복했고, 민주당은 '성장 클럽(CfG)'의 전제를 수용했다. 탈통합은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나는 탈통합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탈통합이 필요한 시기와 맥락은 분명히 존재한다. 1960년 흑인이라면, 나 또한 그토록 강력한 약을 원했을 것이다.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뉴딜 경제가 침체하며 탈통합과 규제 완화는 필요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해체할 때가 있으며 다시 모을 때가 있다.

    지금은 재통합(consolidation)의 때이다. 지난 10년간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은 노동, 상품, 자본의 자유로운 흐름을 찬양하던 태도를 버리고 그 폐해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2013년, MIT의 데이비드 오토는 「중국 충격」 논문에서 세계화가 미국 노동계층에 가한 충격을 기록했다. 이후 중산층 붕괴와 국가 안보 약화를 주제로 한 연구들이 쏟아졌다.

    엘리트층은 이제 미국 경제의 재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를 도입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유지하면서 기술 수출 통제까지 추가했다. 2023년,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세계화의 위험성과 경제적 연대(solidarity)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했다. 공화당의 루비오와 홀리도 유사한 입장을 반복해왔다.

    현재 경제 분야에서는 초당적 재통합 합의가 형성되고 있다. 제조업의 귀환, 핵심 산업의 국유화, 중산층 번영의 회복이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재구조화되고 있으며, 노동과 자본, 엘리트와 서민의 이익을 다시 결합하려는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문화와 사회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합의는 아직 없다. '다양성'은 여전히 미덕으로 여겨지며, 문화적 탈통합은 여전히 진보 진영의 신앙고백처럼 기능한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1950년대에 살고 있지 않다. 2012년 찰스 머레이의 『분열』은 백인 노동계층에서 주류 가치관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보여주었다.

    결혼은 쇠퇴했고, 중개 조직들은 소멸하고 있다. 종교는 더 이상 삶의 중심이 아니며, 가정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맡겨졌다. 나는 오래전 이 잡지에서 '연대의 위기(Crisis of Solidarity)'를 말한 바 있다. 이제는 분명히 체제 전체가 해체되고 있다. 이민과 조국애 문제에서조차, 정치의 핵심 동력은 "해체된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다.

    국경을 복원하라는 요구, 국민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호소, 남자는 남자요 여자는 여자라는 주장조차 이제는 재통합의 신호이다. 인간 정체성의 경계조차 해체되는 이 시기에, 질서의 회복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러한 재통합을 파시즘이라 비난하며, 여전히 다문화주의의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나는 이로 인해 진보 진영이 향후 상당 기간 동안 정치적 소수파로 전락할 것이라 예측한다. 왜냐하면 해체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는 이 공포를 더욱 자극할 것이며, 재통합을 약속하는 정당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 전환기 속에 있다. 정치문화의 핵심 요소들이 탈통합의 유산과 결별하고 있다. 경제적, 문화적, 도덕적, 영적 재통합을 위한 길은 다양하다. 어떤 길은 지혜롭고, 어떤 길은 어리석다. 어떤 길은 고귀하며, 어떤 길은 타락적이다. 어떤 길은 유익하고, 어떤 길은 해롭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혜로운 길을 양육하고, 고귀한 길을 옹호하며, 유익한 길을 촉진하는 것이다. <끝>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7-20 07:04]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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