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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푸틴과 게르기예프 |
알렉세이 나발니의 미망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이탈리아 당국에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공연을 취소하라고 촉구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게르기예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오랜 지지자로, 유럽 내에서는 대표적인 ‘푸틴의 문화 대사’로 알려져 있다.
게르기예프는 오는 27일 이탈리아 캄파니아주의 카세르타 왕궁에서 열리는 여름음악축제에 참가할 예정이며, 그가 이끄는 마린스키 극장 소속 솔리스트들과 무대에 설 계획이다.
그러나 이 공연이 공개되자마자 우크라이나 전쟁 피해자와 러시아 반체제 인사들을 중심으로 거센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나발나야는 이탈리아 유력지 ‘라 레푸블리카’에 기고한 글을 통해 “게르기예프는 단순한 예술인이 아니라, 푸틴 체제를 세계무대에서 미화하는 이데올로그”라고 비판하며, “2025년 여름, 전쟁이 3년째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가 유럽의 품격 있는 문화 행사에 초대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르기예프는 1990년대부터 푸틴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해왔으며, 2012년 대선 당시 푸틴의 선거 광고에 출연하고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22년 이후 유럽 주요 공연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상태였다.
나발니가 생전에 설립한 ‘반부패재단’ 역시 이탈리아 내무부에 게르기예프의 입국 금지를 요청했으며, 공연 취소를 촉구하는 서한을 문화부와 축제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연이 유럽연합(EU) 예산이 투입된 문화행사라는 점도 비판 여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비판자들은 “EU 자금이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푸틴 정권의 대변인에게 돌아가선 안 된다”고 주장하며 공연 취소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축제를 주관하는 캄파니아주의 빈첸초 데 루카 주지사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문화의 본질”이라며 게르기예프 초청을 옹호했다.
그는 “이스라엘 지휘자 다니엘 오렌도 함께 초청됐다”며, “예술가에게 자국 지도자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내에서는 시민사회와 일부 정치권 인사를 중심으로 공연 철회 요구가 이어지고 있으며, 유럽 내 반푸틴 여론과 EU의 정책 방향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게르기예프가 예정대로 지휘봉을 잡을 수 있을지, 그를 둘러싼 문화외교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