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56] 안녕, 굿바이 기독교
  • 잭 치스널 is writes about faith and culture at Holy Fooling. 칼럼리스트

  • 비틀즈는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였다. 1966년에 발표된 앨범 ‘Revolver’에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스튜디오 실험들과 대마초를 암시하는 파괴적인 가사들과 함께, 소득세를 너무 많이 낸다는 성토곡인 “Taxman”도 담겨 있다.

    존 레논은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아 CIA의 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Revolution”에서 “모든 게 잘 될 거야”라는 희망적인 가사로 마르크스주의에 찬물을 끼얹으며 좌파로서의 입지는 흐려졌다. 비틀즈는 흔히 생각하는 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결국 이들은 그리스도교 문명이 사회를 지탱하던 마지막 시기의 영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이들의 어린 시절 리버풀은, 기독교가 삶의 배경으로 평온히 자리하던 시대였다. 당시의 리버풀은 급진주의나 노동조합주의가 득세하던 도시가 아니었다. 급진주의자는 맨체스터에 있었고, 리버풀 사람은 보수당 지지자였다. 이들은 본당 회관에서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했고, 교회 바자회에서 처음 공연을 하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존은 교외의 깔끔한 집에서 이모와 함께 자랐는데, 이모는 그를 주일학교에 등록시켰지만 정작 본인은 부활절이나 성탄절 외에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그의 집에는 책이 가득했고, 그는 토론을 권장받았다.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은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의 뿌리를 지녔다. 물론 19세기에는 교파 간 갈등이 있었지만, 결혼과 시간이 그 골을 메웠고, 리버풀이 글래스고(스코틀랜드 서중부에 있는 도시)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소년들은 성장하며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별로 보이지 않았다. 1966년 존은 기독교의 쇠퇴를 거의 즐기는 듯 선언했다. “기독교는 사라질 거야. 사라지고 쪼그라들 거야... 우린 지금 예수보다 더 인기가 많아. 누가 먼저 갈지 모르겠어—락앤롤(rock ‘n’ roll)일까, 기독교일까?” 그러나 이 상실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각자의 인생과 예술에 깊이 새겨졌고, 이들은 오늘날 포스트-기독교 시대를 상징하는 전형이 되었다.

    존은 해체자(deconstructor)였다. 1963년 그는 “예수가 오늘날 빈민가에 다시 내려와 살아가는” 내용을 담은 뮤지컬을 쓰고 싶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유월절 음모》와 같은 회의론적 저서를 탐독했고, 다빈치 코드보다 더 급진적인 예수 해석에 매료되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대해 늘 깊은 흥미를 지녔다.

    1966년의 논란성 발언도 이 맥락에 있었다. 그는 예수를 “왜곡”한 건 그를 따르는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고 여겼는데, 비틀즈는 공연 중 종종 장애 아동을 대면하게 되었고, 마치 치유의 은사를 지닌 성인처럼 그들을 만지길 요구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기독교가 잘못된 숭배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결코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니체의 결론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발언에서 자주 간과되는 점은, 그가 락앤롤조차도 “사라질 것”이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직관은 그에게 확장되는 도덕적 위기를 낳았고, 결국은 허무주의적 개인주의로 이끌었으며, 이는 그의 인도주의적 열망과 결코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다.

    그의 첫 솔로 앨범의 마지막 곡은 “God”이라는 곡으로, “나는 나를 믿어 / 요코와 나를 / 그것이 현실이야”라고 노래하며, 하느님, 엘비스, 딜런, 심지어 비틀즈마저 부정했다. 그는 자신이 상징(icon)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인식은 그를 구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상징으로 만든 것이 정신이상자의 눈엔 위선처럼 보였고, 이는 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폴은 향수주의자(nostalgic)다. 그의 이른바 ‘종교적’ 노래들은 모두 어렴풋하게나마 가족을 상기시킨다. “Eleanor Rigby”에는 원래 ‘매카트니 신부’라는 이름의 사제가 등장했는데, 팬들의 억측을 우려해 변경되었다. “Let It Be”는 자주 언급되듯 그의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고, “Lady Madonna”는 리버풀의 가톨릭 어머니들을 성화하려는 시도였다.

    폴의 음악에는 사랑받고 양육받았던 어떤 원초적 자궁과 같은 공간으로 돌아가고픈 갈망이 담겨 있다. “Honey Pie”나 “When I’m Sixty-Four” 같은 음악홀 풍의 유쾌한 곡들이 그러하다. 작사 작곡은 그를 자주 리버풀로, 그리고 교회로 되돌려 보낸다. “Eleanor Rigby”는 흔히 종교 비판 노래로 해석되지만, 실은 쇠퇴하는 기독교 시대의 본당이 지닌 고독을 보여주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노처녀나 인정받지 못한 독신 사제가 비로소 비극적 인물로 인식될 수 있는 장소가 본당임을 암시한다. 

    존의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발언을 설명하며, 폴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교회가 정신 차리길 바랐어요. 사실 우린 교회를 지지했어요.”

    조지는 배교자(apostate)다. 그의 기독교에 대한 거부는 단순한 종교적 거부를 넘어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여정은 그의 부모 세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들은 1944년 교육법에 따라 모든 아동이 기독교 예배와 교리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항에서 자녀를 제외시켜달라고 요청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였다. 훗날 조지는 동양의 신비주의를 삶의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를 서구 종교와 대조하였다. 그는 서구 종교를 얕은 세뇌로 간주했다. 1969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교회에 가는 건 괜찮아요. 기분도 좋죠. 하지만 거기선 당신을 ‘그리스도 의식(Christ consciousness)’으로 이끌어주지는 않아요.”

    예외가 있다면, 링고 스타는 회심자(convert)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하느님을 찾았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했다. 물론 그는 그 이상의 설명은 피하지만, 이를 단순한 히피식 범신론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이 사실은 신약성경—요한 1서 4장 8절—에 나오는 성경 말씀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더라도 링고는 주관주의자(subjectivist)를 상징한다. 기독교가 모든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내면의 순수한 체험의 세계로 퇴각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들의 음악이 남아 있다. 이 음악은 기독교의 태양을 등지고도 그 온기 속에서 창조된 천재들의 산물이다. 이제 그들의 음악을 듣는 우리는 그들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지평 너머로 사라져간 그 빛을 다시 찾으려 하고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7-16 07:0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 다른기사보기 리베르타임즈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