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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19 |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재일조선인 체육학부 학생 김00 씨의 투고문을 게재하며,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우리 말 행사’의 체험기를 소개했다.
표면적으로는 민족 정체성과 언어사랑을 고취하는 글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글은 북한식 체제 선전의 전형적인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선 글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체육을 하는 내가 왜 우리 말 행사에 나가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토로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개인적 거리감이었으나, 결국 그 거리감은 ‘공화국기’, ‘조국애’, ‘자존심’이라는 북한 체제어휘로 강제 전환된다.
행사에 참여하면서 ‘우리 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주장은 결국 “애국심의 높이만큼 공화국기가 더 높이 휘날린다”는 북한 대표팀 감독의 발언으로 귀결된다. 언어행사가 곧 정치선전의 수단이 된 것이다.
‘우리 말’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내면의 변화는, 결국 “금메달을 위해 자신을 깡그리 바치라”는 군사적·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연결된다.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공화국 체제에 복무하기 위한 무기이며, 체육은 개인의 건강이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화국기’를 높이 들기 위한 충성심의 시험장으로 전락한다.
또한, 저자는 일본어를 사용하는 자신을 “자존심도 긍지도 없는 좀스러운 존재”로 자책하며, 일본어 구사 능력을 부끄러워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는 언어의 다양성과 융합적 정체성을 허용하지 않는 폐쇄적 민족주의의 논리이며, 조선대학교 내부에서 학생들에게 북한식 언어순결주의가 강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사 준비 과정에서 함께한 조청 지도원과 사무국 동무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부분은, 사실상 일종의 ‘집단 동원’과 ‘사상 학습’을 정당화하는 서사에 가깝다. ‘지도원’, ‘토론’, ‘각본’ 등은 자발적 창작활동보다 사전에 기획된 체제 교육의 분위기를 암시한다.
결국 이 행사는 언어 교육이 아니라 북한식 애국주의 교육이며, 학생들에게 ‘자성’을 강요하고, ‘감격’을 연출하며, ‘자존심’을 당의 지도력 아래 세뇌시키는 정치행사였음을 드러낸다.
저자의 체험기는 개인의 성장 서사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조총련 주도의 이념교육과 북한 체제 선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다.
‘우리 말’을 사랑하는 것이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으로 이어지고, 일본사회에서의 현실과 고민은 ‘좀스러운 자아’로 폄하되는 이 왜곡된 구조는, 오늘날에도 재일조선인 학생들이 ‘선택 없는 정체성’을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조총련이 주도하는 민족교육이 진정으로 학생들의 정체성을 풍요롭게 하는 길인지, 아니면 체제 충성심을 심는 구시대적 도구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시점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