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형제 주교님들, 감히 이렇게 여쭙습니다. 지금 주교님들께서 인도하고자 하시는 교회의 방향은 과연 어디입니까? 주교님들께서는 자주 “하느님 나라”를 언급하시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주교님들의 메시지를 보면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 건설이 마치 하느님 나라의 중심 개념처럼 보입니다. 그 의도를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참된 실재—이미 오늘 우리 마음 안에 임재하며, 종말에 완성될 그 나라—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교님들의 담화에는 거의 종말론적 전망(eschatological horizon 현재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미래 사건에 대한 기대나 믿음이 부족함을 의미)이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이라는 표현이 몇 차례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너무 모호하여, 그 말씀을 듣고 하늘을 우러를 수 있을 신앙인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교님들의 마음 안에도 분명 하늘나라에 대한 “지극한 희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왜 그 희망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과거의 수많은 주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왜 감히 천상의 예루살렘, 지옥, 죽은 이들의 부활, 영원한 생명과 같은 종말론적 진리들을 전하지 않으십니까? 이러한 진리들은 오늘날의 투쟁을 밝히는 빛이 되며, 모든 현실에 궁극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는 진리입니다.
물론, 지상에서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를 실현하려는 이상은 아름답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우리가 신앙으로 이미 시민권을 받은 하늘 도성(필리 3,20; 히브 11,10.16)에 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도성의 공동 건설자이며, 주교님들은 주교직이라는 직무를 통해 그 도시의 주요 건축자이십니다. 주교님들께서도 이 세상 도시에 일정 부분 기여하셔야 함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정치가나 사회운동가의 전문 영역이지, 주교의 본령은 아닙니다.
저는 주교님들의 사목적 체험이 지금의 CELAM 메시지에서 나타난 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하다고 믿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CELAM은 주교님들의 자문기구일 뿐이며, 주교님들께서는 교황좌와 하느님께 직접 응답하시는 분들이므로, 각 교구에서 사목 방향을 자유롭게 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CELAM의 방향성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는 것도 가능하고, 또한 정당한 일입니다.
또한 CELAM 문서들 간에도 차이가 있음을 상기드립니다. 전체 대륙 차원의 일반 총회 문서와 상임위원회가 발표하는 보다 제한된 문서 간의 차이, 그리고 더 가까이는 문서를 작성하는 신학 고문들과 주교단 사이의 입장 차이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구분을 감안할 때, 교회 내부의 작동 원리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ELAM의 이번 메시지는 오늘날 교회가 처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 영성보다 사회성이 앞선 교회 말입니다.
CELAM 제40차 총회를 통해 주교님들께서는 이 방향성을 더욱 명확히, 단호히 강조하셨습니다. 메시지 안에서 “쇄신”, “약속”, “헌신”이라는 표현을 세 차례나 반복함으로써 그러한 결단을 공식화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주교님들께서 반복적으로 사회 문제와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다루시다 보니, 의도치 않게 교회의 종교적 본질이 그림자 속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우선권이 부정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왜곡은 1968년 메데인(Medellín) 주교총회 때부터 점차 시작되어 오늘날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교님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교회의 영적 본질이 제때에 빛 속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언젠가는 서서히 사라지고 맙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의 중심성에도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그분은 주변부로 밀려났습니다. 여전히 “교회의 머리”, “세상의 주님”으로는 언급되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차원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침묵과 희석의 결과는 오늘날 교회의 쇠퇴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우리가 이 길을 계속 간다면, 쇠퇴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생생한 중심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기에, 우리는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형제들이시여, 이 수치스러운 수치들 자체가 바로 우리 모두에게-특히 주교님들께—교회의 방향을 재고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신앙을 새롭게 불태워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는 다시 살아나고, 질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니 너무도 오래 전부터 이미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그림자에서 끌어내어 빛 속에 드러내야 할 때입니다. 교회 안에서(ad intra)—양심과 영성, 신학 안에서—그리고 교회 밖에서(ad extra)—복음선포, 윤리, 정치 안에서—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중심성을 다시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는 지금, 교회의 참된 중심, 곧 “첫사랑”(묵시 2,4)으로 돌아가야 할 긴급한 순간에 서 있습니다.
주교단의 한 선배였던 성 치프리아노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보다 앞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Christo nihil omnino praeponere). 형제들이시여, 제가 새로운 것을 요청드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단지 가장 본질적인 믿음의 요구를 상기시켜드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오래된” 믿음이며,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선택하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라는 요청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특히 주교님들께 요구되는 바이며, 베드로에게도 요구되었던 것이 아닙니까?(요한 21,15-17 참조) 그러므로 저는 주저 없이 말씀드립니다. 오늘날 시급한 것은 힘 있고, 명확하며, 단호한 그리스도 중심성—곧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희망의 문턱을 넘으며」에서 말씀하신 바 있는 “폭발적인” 그리스도 중심성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협소하고 고립된 “그리스도 유일주의”(Christomonism)가 아니라, 모든 것—모든 인간, 전체 교회, 사회 전체—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넓고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 중심성입니다.
형제 주교님들, 제가 이토록 직접적으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교회가 영적 중심에서 점차 멀어져 가고 있다는 징후들을 깊은 우려 속에 지켜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이는 교회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커다란 손해입니다. 집이 불타고 있을 때, 누구라도 경보를 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 앞에서 마지막으로 제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교님들의 메시지를 읽고, 20년 전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해방신학의 반복되는 애매함과 오류를 더는 견딜 수 없게 되었던 그날, 제 안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라, 책상을 치며 “이제 그만이다! 나는 말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번에도 바로 그와 같은 내면의 움직임이 저를 이 서신으로 이끌었습니다. 바라건대 성령께서 이 모든 과정에 함께하셨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같은 성령의 빛을 주교님들 위에 내려주시기를 청하며, 저는 주교님들의 형제요 종으로서 이만 줄입니다.
그리스도의 종
클로도비스 M. 보프 신부, O.S.M.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