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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 11 |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36차 전원회의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렸다.
조선중앙통신은 회의 결과를 ‘전원 찬성’이라는 형식적 표현과 함께 의례적으로 보도했지만, 정작 법률의 실질적 내용이나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이번 회의는 북한의 ‘입법’ 시스템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분석된다.
겉치레 법률, 실질은 공백
이번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주요 법률은 ▲「지방발전 20×10 정책」집행법 ▲생물안전법 ▲노동능력의학감정법 등이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지방균형발전’과 관련된 「20×10 정책」은 전국 200여 개 시·군을 10년 동안 매년 20개씩 집중 개발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에 대한 ‘집행법’이 최고입법기관 회의를 통해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의 결과에 정책 평가, 예산 확보 방안, 중앙-지방 간 권한 배분 문제 등 실질적 토론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정책 결정 구조가 근본적으로 ‘당의 지시 → 형식적 입법 → 전면 추종’이라는 일방통행식 지침 체계로 운영되고 있음을 다시금 드러낸다. ‘전원 찬성’이라는 문구는 실질적인 토론과 이견이 없는, 또는 허용되지 않는 정치 구조를 반영한다.
과학과 안전의 영역조차 정치적 통제 아래
이번 회의에서는 「생물안전법」과 「노동능력의학감정법」도 함께 채택되었다. 전자는 전염병 대응 및 생물학적 연구·실험의 안전 관리를 위한 법률로 추정되며, 후자는 노동 능력 평가와 관련된 의료·사회보장 분야의 기준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학적 전문성과 투명한 기준이 요구되는 이들 법안 역시 아무런 공청회나 전문가 의견 수렴 없이 ‘전원회의’에서 졸속 채택되었다.
이는 공공보건이나 장애인의 권리, 사회복지 제도 등 민감하고 실질적인 문제들이 정권의 통제와 정치 선전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는 최고재판소 판사와 인민참심원의 ‘소환 및 선거’도 함께 이루어졌다고 보도되었다. 이는 겉보기에는 사법기관 인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는 듯 보이나, ‘선거’라는 표현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비공개, 비경쟁,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북한 특유의 폐쇄적 사법 구조를 반영한다.
판사나 참심원의 교체 여부, 자격 검증, 시민 참여는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사는 사실상 당의 인사지침에 따라 사전 결정된다. 이는 북한 사법 시스템이 결코 ‘독립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법치’의 탈을 쓴 정권 유지 도구
북한은 ‘법의 나라’를 표방하며 연례적으로 다양한 법률을 선전하지만, 실제 내용은 대부분 당정 일체 체제에서 당의 지침을 법률 형식으로 포장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명목상 ‘입법기관’이지만, 정작 이 기구가 보여주는 모습은 김정은 정권의 일방적 통치 결정에 요식적 합법성을 부여하는 통과의례적 장치에 불과하다.
진정한 ‘법치’는 권력 분립과 독립된 사법·입법 기관이 작동할 때 가능하다. 이번 전원회의는 북한의 통치 체제가 법률을 얼마나 도구화하고 있으며, 법조차 권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체제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