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41] 갱신은 바알과 싸우는 자들로부터 시작된다.
  • 피터 J. 레이스하트 is president of the Theopolis Institute, Birmingham, Alabama. He posts regularly at his Substack, Notes from Beth-Elim. 연구소 소장

  • 판관기(Judges) 6장에 이르면 우리는 이미 일정한 리듬에 익숙해져 있다. 이 책의 반복되는 구조를 우리는 잘 안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면, 야훼는 그들을 압제자에게 넘기신다. 이스라엘은 야훼께 부르짖고, 그러면 야훼는 그들을 구원할 사사를 일으키신다. 이후 이스라엘은 십수 년 정도 평화를 누린다.’ 판관기 6장도 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고, 야훼는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신다. 그런데 이번엔 리듬이 깨진다. 메뚜기 떼처럼 들이닥친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탈하고, 수확물을 약탈하며,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다. 이스라엘은 동굴과 굴로 도망쳐 숨는다.’ 그들은 단순히 판관이 필요한 게 아니라, ‘부활’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야훼는 처음부터 판관을 보내지 않으신다. 대신 예언자를 보내신다. 이는 좋은 징조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예언자는 ‘드보라’였고, 그녀는 바락을 불러 군대를 소집시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예언자는 드보라와 다르다. 위로의 말은 전혀 없고, 대신 언약 소송을 제기한다. 그는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들을 상기시키고, 그들의 불순종을 고발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스라엘은 아무 반응이 없다. 회개하지도 않고, 예언자를 죽이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너무 무감각해져서 반항할 기력조차 없다. 마치 전 국민이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말을 잃은 듯하다.

    마침내 판관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여전히 기존의 틀을 벗어난다. 오드니엘, 삼갈, 에훗, 드보라, 바락 등 이전 판관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들의 기원 이야기는 없지만, 기드온은 다르다. 야훼의 천사가 오프라에서 기드온에게 나타나 그 아버지 요아스의 상수리나무 아래 앉는다. 오프라는 ‘먼지투성이’라는 뜻이다. 미디안의 침략으로 기드온의 고향은 초토화되어 있다. 드보라도 나무 아래 앉아 이스라엘을 심판했지만, 이 상수리나무는 바알에게 바쳐진 성스러운 나무로 보인다. 야훼의 천사가 적진을 침입한 것이다. 바알, 곧 풍요의 신이 황무지로 만든 땅으로 야훼가 들어오신 것이다.

    천사가 발견한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즙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다. 썩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는 동굴에 숨지 않았고 타작할 밀이라도 가지고 있다. 밀을 포도즙 틀에서 타작한다는 것은, 이 사람이 메뚜기 떼를 몰아내고 땅의 곡식과 포도주, 기름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천사는 기드온을 “용사”라 부르며, 그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기드온은 강해 보이지도, 강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야훼가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며 원망하고, 자신은 너무 미약하고 보잘것없다며 거절한다. 모세도, 예레미야도 비슷한 변명을 했다. 야훼는 기드온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며, 모세에게 그러셨듯 ‘표적’을 주신다.

    기드온은 떡과 밀가루, 어린 염소를 상수리나무 아래에 차려놓는다. (히브리어로 ‘게디’는 ‘어린 염소’이며, 이는 기드온의 이름과 언어유희를 이룬다. 기드온은 ‘염소’다.) 천사는 그것을 바위로 옮기라 명하고, 지팡이로 건드려 불태운다. 이 장소 이동은 핵심적이다. 기드온이 나무 아래가 아닌 바위 위에서 예배한다면, 즉 오프라의 바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반석을 경배한다면,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이다. 불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할 것이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이렇다.
    “너희가 고통받는 이유는 야훼를 버렸기 때문이다. 정복을 다시 시작하라. 모든 우상과 기념비를 파괴하고, 바알에게 제사하는 푸른 나무들을 베어내라.”
    천사도 기드온에게 같은 명령을 내린다.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물라.”

    ‘기드온’은 ‘도끼질하는 자’ 혹은 ‘파괴자’라는 뜻인데, 그는 이름 그대로 행동한다. 그는 바알의 제단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은 땔감으로 바꾸며, 아버지 요아스의 황소를 잡아 짓밟힌 제단의 머리 위에 새 제단을 쌓아 야훼께 제사를 드린다. 다음 날 아침, 오프라의 주민들은 제단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기드온을 죽이자고 외친다. 원래 우상숭배자를 처형해야 할 이스라엘이, 지금은 우상 파괴자를 처형하겠다고 나서는 뒤틀린 공동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요아스는 바알이 스스로 복수하라며 대응한다. 이 말은 모호하지만,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기드온을 벌할 것이다. 하지만 기드온이 계속 살아 있는 순간마다, 바알은 신이 아님이 입증된다.

    기드온이 오프라의 제단을 부쉈을 때, 그는 이스라엘 앞에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제시했다. 상황은 정치적이 아니라 신학적이다. “누가 진짜 신인가?”
    바알이 신이라면 그를 섬기고, 야훼가 신이라면 바알의 모든 흔적을 제거해야 한다. 이 이야기의 중심은 야훼께 있다. 기드온은 망설이고, 두려워하며, 주저한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이는 기드온이 아니라 야훼다. 야훼는 자신이 참 하느님이며, 바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신다.

    우리가 판관기 6장에 도달할 무렵, 우리는 보통의 사사들—양날 검을 들고, 소몰이 막대를 휘두르며, 적의 두개골에 못을 박는 자들—을 기대하게 된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전투를 암시하다가, 그 기대를 일부러 자꾸 좌절시킨다. 결국 전투가 벌어지지만, 그 이전에 중요한 순서가 있다. 시편 135편은 우상숭배자들이 섬기는 우상처럼 되어간다고 말한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손은 무력하고, 혀는 말하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죽음에서 살아나려면, 기드온은 먼저 자기 집 안의 우상을 부숴야 한다. 심판은 집에서 시작된다.

    교회에게도 늘 그렇다.
    정치적 격변이 무엇이든, 우상숭배는 항상 근본적 위협이다.
    갱신은 언제나 ‘도끼를 든 자들’, ‘바알과 싸우는 자들’에게서 시작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6-30 22:04]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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