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년 전, 갓 탄생한 이탈리아 왕국이 교황령의 잔여 영토를 정복하고 교황 비오 9세가 스스로를 ‘바티칸의 죄수’라 칭하며 레오 성벽 뒤로 물러났을 때, 유럽의 지식층은 교황권―더 나아가 가톨릭교회 전체―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실상 끝장났다고 단정했다.
과연 그랬을까.
지난달, 비오 9세의 열두 번째 후계자가 선출되자 전 세계의 시선은 그 어떤 국가나 제도의 지도자 교체에서도 보기 힘든 열기로 로마에 쏠렸다. 그 배경에는 1878~1903년 재임한 교황 레오 13세의 공이 크다. 그는 교황직을 전 세계적 도덕 교훈의 중심이자 보편적 도덕 증언의 도구로 탈바꿈시키며, 가톨릭교회를 14억 신자를 아우르는 지구촌 공동체로 성장시키는 동력을 마련했다. 다양성과 포용성 면에서 견줄 대상이 없는 그 공동체 말이다.
5월 8일 밤,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미국 중서부 출신의 교황 레오 14세는, 예의 바르고 영민하며 노련하기에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지만, 마크 트웨인의 유명한 농담을 변주해 이렇게 말했을 법도 하다. “교회의 사망 소식은 몹시도 과장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에 있던 우리는 제267대 교황을 맞이한 열광적 환호에 압도됐다. 그럼에도 ‘베드로 중심주의’―모든 가톨릭적 사안을 교황과 교황청에 과도하게 집중시키는 경향―에는 잠재적 부작용이 있음을 그때나 지금이나 느낀다.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다. 성급한 한 줄 짜리 멘트와 트윗이 난무해 오염된 글로벌 소통 공간에, 성숙한 어른의 언어로 발언할 인물이 세계에는 필요하다. 레오 14세는 이미 그 역할을 보여주었다. 그는 분쟁과 전쟁의 어둠 속에 진리의 밝은 빛을 비춰 왔다. 또한 올해가 니케아 신경 반포 1700주년임을 상기시키며, ‘진리 안의 일치’라는 교회의 표징이 어디에 뿌리내려야 하는지 명확히 제시했다.
그러나 베드로 중심주의의 그늘도 분명하다. 로마에서 일어나는 일 만으로는 전 세계 가톨릭교회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결코 다 담아낼 수 없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90년 회칙 「구속자의 사명」에서 “교회는 여러 활동 가운데 하나로서 ‘선교’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곧 선교”라고 가르쳤다. 다시말해, 마태 28장 19절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정의된 복음 선교가 곧 교회라는 뜻이다.
따라서 토고 선교지의 라이언 신부 사목, FOCUS(미국 가톨릭 캠퍼스 사도직)의 대학 선교, 카메룬 바멘다 대교구의 활력 넘치는 사목,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 신자와 사제들의 영웅적 증언, 교회가 지원하는 위기 임신 센터와 호스피스, 그리고 홍콩 감옥에서 고독한 증언을 이어가는 지미 라이, 나아가 각자의 본당에서 벌어지는 일은 로마의 동향 못지않게―어쩌면 그보다 더―중요하다.
미국 건국 당시 가톨릭 신자는 약 2만 5천 명이었고, 그중 백 명도 채 안 되는 이들만이 당시 교황(비오 6세)의 이름이나 하는 일을 알았을 것이다. 이제 추는 정반대로 기울어, 너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로마의 소식에―정치화된 문화와 21세기식 ‘엔터테인먼트’ 뉴스 환경이 결합해―과도하게, 때로는 광적으로 집착한다. 교황청 소식에 관심을 두는 것은 좋지만, 정보가 부족한 블로그와 SNS가 부추기는 집착은 교회 현실을 왜곡하고 불필요한 불안과 헛된 기대를 키울 뿐이다.
교황 레오 14세 앞에는 막중한 과업이 놓여 있다. 우리는 그를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동시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 그의 모든 구상과 임명을 일일이 해부하며 교회의 미래가 거기에 달린 듯 떠들어대지 않는 것이 그를 돕는 길이다.
한 달 전 시스티나 성당에서 “악첵토”(수락합니다)라 답한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그래서 고통에 익숙한―로베르토 프레보스트 추기경에게도 짐을 더 얹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