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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이백만 전 주교황청한국대사 |
교황청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지렛대 삼아 북한에서 현재 허용되지 않는 선교 자유를 확보하려고 했다는 내용의 비화(祕話)가 공개됐다.
이백만 전 주교황청한국대사는 신간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메디치미디어)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을 추진하던 2018∼2019년 무렵 "교황청은 최소한 베트남이나 중국만큼의 수준이라도 선교의 자유를 받아내겠다는 요량이었고, 북한 김정은이 이 정도는 수용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교황 방북 프로젝트에 얽힌 뒷얘기를 소개한다.
이 전 대사는 책에서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에 정치적 시선이 과도하게 쏠리는 분위기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며 북한에 대한 교황청 요구의 핵심은 선교할 자유를 인정하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애초 교황의 방북 구상에 대해 교황청 내부나 보수적인 사제들 사이에 반대 기류가 꽤 있었다. 사제가 한명도 없는 '가톨릭 황무지'인 북한을 교황이 방문하면 체제 선전에 이용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반대론의 주 논거였다고 한다.
하지만 교황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더욱 북한에 가야 한다는 의사를 피력하며 반대론을 돌파했다고 한다.
"나는 교황이기 이전에 선교사다.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다가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 나는 북한에 갈 것이다. 준비 잘해달라."
교황이 사제들과의 토론에서 이렇게 얘기하면서 교황청의 의견은 방북 추진으로 정리됐다.
당시 교황청은 5가지 요구 조건을 통해 선교의 자유를 우회적으로 실현하려고 했다. 책은 첫째, 북한이 가톨릭 공동체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고 둘째, 가톨릭 공동체에서 교황청이 인정하는 신부가 미사를 집전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을 당시 요구사항으로 꼽았다.
다음 조건은 ▲ 북한의 가톨릭 신자들이 탄압의 두려움 없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 사람은 어떤 종교인지 따지지 말고 모두 석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종교 단체의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교황청은 북한의 자존심을 고려해 '선교의 자유'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이처럼 에둘러 조건을 설정했지만,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경우 평양에 어떤 신부를 파견할지까지 미리 검토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북한 당국이 한국 신부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이탈리아 등 제3국의 비한국인 신부 가운데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또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미리 파악해 놓기도 했다."
당시 교황이 강한 방북 의지를 드러내면서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까지 교황청과 북한의 물밑 교류를 지켜보는 등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이 이른바 '노딜'로 끝나면서 교황 방북 추진도 급격하게 동력을 상실했다.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로 교황의 방북 프로젝트가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책에서 표명한다.
그는 "교황 방북이 다시 추진된다면 그 출발선은 2027 가톨릭 세계청년대회(WYD)를 준비하는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교황 방북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2025년 1월 새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47대)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 '세속의 세계 대통령'과 '영적인 세계 대통령'이 평양을 찾고 여기에 한국 대통령이 합세한다면 한반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김·도·윤 <취재기자>